빼곡히 메운 4백자원고지를 두툼히 쥐어 들고 이대학보사의 문을 두드렸던 한 사람이 있었다.

교졍ㆀㅔ 쌓여가는 낙엽을 쓸며 가을의 아름다움과 주어진 환경에 대한 감사함을 참을 수 없어 글을 써노라고, 쑥스러움 반 흐뭇함 반으로 웃음을 지으며, 학보 휴욱실란에 `낙엽을 쓸면서'를 썼던 본교 경비원 김영래씨다.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경쾌한 발검을이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케한다.

어떤 호칭을 붙여야 할 지 몰라 망설이는데, "기냥 아저씨라고 하믄 되지, 김씨 아저씨"라며 건강한 이를 드러내 웃는 것이 눈에 부시다.

우리학교에서 근무한 지 석달밖에 안됐지만 결근한 경비원자리를 그때마다 대신하는 직무덕에 아저씨는 교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학생들을 볼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벗어진 머리로 먼저인사를 하면 송구스럽게 맞인가를 하던 학생들은 다음부터 꼭 고래숙여 인사를 한단다.

서로 먼저 아는체하고 웃는 얼굴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각박한 서울살이의 또 다른 모습이리라. 저마다 항아리속에 몸을 숨기고 서로 깨지기를 두려워해 맨살을 맞대지 못하는 사람들속에서 그는 먼저 다가가 종종 웃음을 선사한다.

아침이면 칼바람을 맞으며 출근해 24시간을 근무하면서도 아저씨는 지겹다고 불평한 적이 없다.

교정을 쓸고나서 청소아주머니나 일손이 필요한 학생들을 도우며 틈날때마다 책을 보고 글을 쓴다고 한다.

초등학교때부터 글쓰는게 마냥 좋았다는 아저씨.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되고 사는 동안 느끼고 떠올리는 모든 것의 기록이 되기에 그는 원고지와 친하다.

또한 하루해가 지면 으레 일기장을 펼쳐 들고 먼 교과서에 나올법한 `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계획'으로 백지를 체워간다.

좀 안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부풀리는 껍데기가 아닌, 꾸밈없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에게 있어 글이란 밥먹는 것처럼 순수한 삶의 일부이자 몸에 녹이든 생체의 한 부분인 것이다.

아저씨는 이전에도 여러곳에 원고를 보낸 적이 있는데 `책을 읽읍시다', `감사하며 삽시다' 등 그 내용은 누구보다도 소박하다.

너무나 많이 들어 식상하고 지겨운 얘깃거리라도 아저씨의 소박한 글로 풀어내면 정다움이 밀려온다.

거창한 것에 대한 탐닉과 허황된 권위에 관한 논의보다도 오히려 작은 것에서보터 삶이 채워질 때 우리는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겐 작다고 사소하다고 잊혀져 가는 것들이 더욱 소중한 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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