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원’을 아십니까?” 어느날 학보사로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이대 물리학과를 나왔다는 그녀는 ‘서대원’의 부인 ‘김경란’이었고 「재정 신청 제도 부활에 관한 입법 청원서」라는 복사물을 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화가인 서대원씨는 적은 대가로 「한국역사만화전집」 14권을 81∼87년 7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었지만 자신의 만화가 덤핑시장에서 다른 만화가의 이름으로 팔리는 일을 겪어야만 했다.

‘원고료를 주었으니 저작권을 산 것이다’라는 교학사를 상대로 한 91년의 법정투쟁에서 서대원씨는 패소했고, 다시 검찰을 상대로 싸움이 시작됐다.

검찰이 직무유기를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공무원의 직무유기는 재정신청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과정속에서 김경란씨가 구속돼 5개월 상당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후 그녀는 ‘재정신청대상확대’를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는 단식과 여러활동으로 희어진 머리와 수척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만화를 그리는 사이 첫아이의 죽음후 4년만에 태어난 둘째는 선천성 심장병을 앓다 수술시기를 놓쳐 정신지체 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혼자힘으로 오랜 세월 많은 싸움들 치뤄낸 그녀를 뒤로 하고 기사로 싣기에는 시기도 계기도 부적절한 자료들이 책상서랍안에 넣어진 채 하루하루가 지났다.

그후 두달여가 흐르고 김경란씨가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왜 이대학보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리지 않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대학보사 기자를 설득하지 못했는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더 많은 자료를 만들어서 갖고 왔다고 했다.

사진을 한장한장 붙이고 손수 편집을 한 또다른 자료들을 “돈이 없어 인쇄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하며 내밀었다.

그녀가 나를 움직인 것은 이 한마디이다.

“나한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에요.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김경란씨는 ‘서대원사건’을 통해 하나의 제도를 바꾸려고 하고 있었고, 자신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해 왔다.

손수 입법청원을 하기위해 뛰어다니며 받은 서명들. ‘법’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혼자 여기저기 알아보고 언론사마다 찾아다니느라 부어터진 발… 나는 아무도 해결하지 않는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그녀가 밟고다녔을 수많은 거리들을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지지한다.

또한 그녀에게는 학보사에 수북히 배달되는 질좋은 책과 사외보들보다 그녀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질낮은 인쇄물들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발걸음이 오늘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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