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글을 씁니다.

아버지도 강경대군을 아시겠지요? 91년도에 명지대에 다니다 집회에서 경찰의 진압에 숨진 학생말이에요. 해마다 그가 사망한 날에는 추모제가 명지대에서 열립니다.

제가 그곳에 갔다고 해서 혼을 내고 싶으시다면 조슴 뒤로 미루세요. 어쨌든 올해로 벌써 6년째인데 떡과고기, 김치가 수북히 쌓인 접시가 운동장 스탠드를 메운 많은 학생들 사이로 돌아갑니다.

오후부터 추모제, 집회 등을 거쳐 벌써 밤이 된지라 학생들은 맛있게 먹지요. 주변에 못받은 사람이 없나 서로 살피면서요. 그 음식은 강군의 어머니가 준비하시는 거래요. 추모제에는 흰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두루마기를 입은 그의 아버지가 참석하거든요. 아마 이분을 아버지도 아실거에요. 전대통령 재판정에서 그의 아들과 주먹다짐을 해서 일간지 사회면에 실린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각종 집회마다 얼굴을 볼 수 있는 분이에요. 강경대군의 어머니, 아버지를 볼 때마다 저는 가슴이 아릿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버지·어머니 생각이 나서요. 투표일마다 여당을 찍는 것이 당영한 아버지와 행여 집회에 나갈까 노심초사하는 어머니가 강군의 어머니·어버지의 모습에 겹쳐 오거든요. 6.25때 홀로 어린 나이에 월남하신 아버지가 "빨갱이"라고 할만한 차림새로 서있는 그가족의 모습이 더더욱 아버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강군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런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을텐데 아들의 죽음이라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그분들은 아들의 죽음으로 달라진 세상을 개탄하는 것이 아닐거에요. 그저 아들이 죽기전부터 잘못 놓여진 세상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수많은 학생들을 자신의 자식삼아 아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세상을 만들고 싶으실테죠. 아마 강경대군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말처럼 "풀한포기 하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세상을 고치고 싶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 지금도 강경대군이 죽던 그때처럼 집회 강경진압 소식이 들려오네요. 행당동에서는 철거 중 성폭행 소식이 들리구요. 많은 사람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애쓰다 잡혀 갔다고 하네요. 마치 그때 처럼요. 그때와 같은 사회에서 저는 아직 살아있기에 강경대군의 추모제가 돌아오면 그의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들 앞에서 슬며시 눈물을 떨굽니다.

그리고 그곳에 겹쳐오는 나의 가족또한 아직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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