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좋은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세번을 이사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훌륭한 어머니가 그 뒤에 있었다는 예로서 거론된다.

그러아 이 일화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점은 오늘날 서울시나 관련 공무원들이 별로 가치를 부텨하지 않는 듯한 교육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맹자의 어머니가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화대학 주변의 교육환경은 누가 보아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미장원과 옷가게·음식점 등으로 이어지는 ‘이대앞’은 서울의 정소년들과 대학생들이 먹고, 마시고, 놀고 소비하기 위해 모여드는 거리의 대명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촌민자역사 건설’과 ‘대현 제2지구 개발추진건’과 같은 일이 모두 실현될 경우, 바야흐로 이들 상가가 ‘이대앞’에 위치한 것인지 이대가 이들 상가에 붙어있는 것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의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우선 우리의 걱정은 주변지역의 상업화로 야기될 ‘교육환결권의 침해’에 대한 일반적 우려에서부터 기인한다.

대학 강의실과 대학 캠퍼스의 연장이 돼야 할 대학가가 그 어느 지역보다도 심각하게 물질주의와 소비위주의 문화로 만연되고 있음은 세계 최고의 대학들을 경쟁 목표로 삼고자하는 윌의 바램과 너무나도 먼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이화인에게는 ‘이대앞’이 더 이상 상업화되고 소비문화 거리의 상징이 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는 더욱 절실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21세기의 주역이 될 훌륭한 여성인력을 키우기 위해 세계 최고의 여자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 이화인이 한마음이 되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 반하는 커다란 걸림돌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이화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인 것이다.

‘이대앞’의 사치·낭비·화려함 등은 곧 이화의 이미지로 자리잡게 됐고 이러한 그릇된 이미지는 ‘이대속’의 학문에 대한 열기·사회에 대한 고민·인생에 대한 진지함 들의 실체를 덮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이미로 작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대앞’의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일은 단순히 상업지역이 보다 밀집됨으로써 늘어날 교통량을 줄이고 환경공해를 방지하는 등의 물리적 차원에서만의 이슈가 아니고 우수학생 유치·재학생의 자부심·졸업생의 사회진출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윌의 생존문제이다.

그동안 이러한 생황의 해결을 위해 ‘교육환경을 걱정하는 교수모임’과 총학생회, 학교의 담당부터 등이 산발적인 노력을 새왔다.

이제 윌는 교수·재학생·동창·학교당국이 모두 한마음으로 참여하여 우리의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대앞’을 우리의 ‘앞’으로 지키겠다는 이화인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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