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의 일이다.

대학입시 원서를 쓰기 위해 교무실에 불려간 나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어느 대학에 가고싶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우물쭈물하던 끝에 ‘××대학이요’힘없이 내뱉어버린 나는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스란히 모아둔 내 성적표와 내가 지망할 수 있는 대학별 분포표를 나란히 펼쳐보이셨다.

그랬었다.

내가 가고싶은 곳은 나의 희망사항일뿐 실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성적과 통계에 의해 엄연히 제한되어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내가 개달아야 했던 전부였다.

× × × 며칠 전 학부제 시행을 둘러싸고 인문대 주최로 진행된 전공결정 설명회에선 ‘과연 내가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을까?’하는 기대 반 의구심 반으로 참석하게 되니 1학년들의 질문과 학교측의 답변이 고도갔다.

교육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채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대학을 시장경제논리에 예속시킨 무분별한 학과통폐합. 이를 걱정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특정 전공에 편중되는 현상’이었고 소위 말하는 인기학과에 많은 학생들이 몰릴 것은 그때부터 기정사실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학부제 시행세칙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전공별 인원수 제한’, ‘그 제한을 가하는 방식’이었음에도 이제와서 대안이 아닌 예상됐던 문제점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만 남아있단 말인가. “제가 그런 어떤 과를 지원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라고 구걸하다시피 묻는 1학년과 “정원과 성적을 참조해 자신이 지망할 수 있는 학과별 분포도를 공개하겠으니 참조해봐라”라는 학교측의 무성의한 답변에 나는 엉뚱하게도(?) 고3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리게 된다.

성적에 맞춰 과를 선택하는 바람에 적성이 맞지 않아 한때 고민을 했던 나. 며칠전 학교측의 설명을 듣고나서 심란해진 1학년 후배. 그리고 학부제라는 그럴싸한 포장뒤에 일명 고등학교 4학년이라 칭해지기까지 하는 현재 1학년들. 정권이 바뀌면 아니 교육부장관이라도 바뀌었다하면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늘어놓는 학제개편에 윌는 진정 놀아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적성이라든지 관심분야에 맞춰 ‘학생의 전공결정’을 학교가 지원하기 보다, 꽉막힌 강의실에 학생들을 몰아놓고 성적이라는 무기로 무한경쟁논리를 주입시키려 한다면 성적앞에 주눅들어 구제방법을 애원하기 보다는 차라리 우리 당당하게 대꾸를 하자. “됐어 됐어/ 이제 그런 학부제는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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