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시작은 그때가 아니었다.

학보는 재미었다고, 왜 좋은 연극·영ㅇ화 놔두고 이상한 연극만 다루냐고, 왜 하고 낳은 사건 중에 허구한날 노동자 얘기냐고 얼마전 조심스럽게 꺼내놓던 친구의 말... 그때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학보사에 처음 들어왓을 때 빈번히 쓰여지던 ‘민중’이란 어휘에 심각한 거부감을 느꼇었으니. TV를 보면 공주는 물론이고, 이를 선두로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이 한 무리 등장한다.

또한 ‘시트코 드라마 ’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 끌어앉히기에 성공하고 잇다.

보면서 쉴 새없이 웃음이 나와야 좋고, 만나면 흥겨운 이야기로 웃음이 끓이지 않아야 좋다.

물론 이런 세태를 보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다.

진지함이 아닌 가벼움뿐이라고, 전혀 건설적이지 못하다고, 순간순간의 쾌락일 뿐이라고... 하지만 난 그들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라고 말하고 싶다.

현학적인 수필집보다 쉽고 재미난 소설에, 가야금이나 거문고보다 사물놀이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이 솔직한 심정 아니냐고 말이다.

그건 가치 없ㅈ고 저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끓고 있는 본성 같은 것은 아니냐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소수의 사람만이 얼굴을 찡그린다면, 그들이 제 아무리 학식이 높고 지위가 높다고 한들 그들의 말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세계 다른 민족이 어떠한지가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 민족 대다수는 예전부터 흥겨움을 즐겼던 것 같다.

얼마전 전공시간에 우리 마당극, 탈춤의 의의를 배운 것이 기억이 난다.

서양인들의 기준에서는 예술성도 없고 비합리적이고 즉흥적이어서 별 가치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에는 서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요소, 즉 ‘신명’이라는 요소가 있어 가치롭다고. 다같이 혼연일체가 되어 흥겨워하게하는 것, 그 ‘신명’은 철저히 민중들의 것이었다.

이제 나는 결코 수준이 낮다거나 저속하지 않은 탈춤의, 우스운 이야기의, 웃기는 인물의 가치를 안다.

또한 ‘민중’이란 어휘에 오랫동안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 그런 잘난 사람의 포장된 시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임을 안다.

나 역시 공주가 제공하는 웃음에, 고상한 음악회보다 사물놀이에 더 빠져드는 ‘민중’임을 애써 외면한채... 이제 나는 고민하지 않는다.

학보를 채우고 있는 재미없는(?) 사건들 역시 내가 빠져들어야 할, 거부할 수 없는 나와 우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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