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8일(수) 강릉해안에 무장공비 침투. 공비 1명 생포, 성명 이광수. 공비 11명 청학산에서 자살. 1명 추가 사살. 추격전 끝에 군인 사망. 공비 3명 사살. 송이버섯 채취 중 주민 공비오인 사살. 1일(화) 최덕근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 아군 오인 사격으로 을지부대 한대성 병장 사망. 공비잔당 3명으로 추정. 각종 매스컴의 첫머리를 장식한 무장공비의 행적은 흡사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인지라 생략이 많은 국방부 측의 브리핑만으로는 보도자료가 충분치 않아 언론을의 취재는 안개 속을 헤매는 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기사는 ‘무장간첩 침투, 총격적 벌어져’, ‘강릉 시내 불안에 떠는 모습’ 류의 큼지막한 제목과 잠수함이 물결을 헤치고 나타나는 모습, 수류탄이 지급되는 군의 모습 등의 화면이 차지하기 마련이었다 . 공비의 침투목적, 공비들이 타고온 잠수함의 좌초경위, 국방의문제점 등 사건의 흐름을 진단할 만한 기사보다는 보다 선정적이고 섬뜩한 보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언론들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94년 대구가스폭발 사고 당시 각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수시간이 걸렸고, 방송사는 타 프로스램으로 사건 가리기에 급급했었다.

미약한 보도에 대해 바른통신모임 등을 통해 강력한 항의가 들어오자 참혹한 폭발현장을 선정적으로 보도할 수 없다고 했던 언론들. 이번 무장공비 사건에서는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보도정신’을 발휘, 선정성은 문제도 안됐는지 청학산 산기슭에서 붉은 피를 흘리던 시체 11구와 신문지에 덮인 최영사의 피는 섬뜩하고 참혹하기 짝이 없다.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인 두 사건을 놓고 다른 양태를 보이는 언론에 대해 그 선정성의 기준을 의심해 볼 수 밖에 없다.

공안 정국을 조장해 사회 내의 어떠한 비판도 얼어붙게 만들어 지배세력의 안정을 보장하는 무장공비 사건보도는 적나라하게 보여줄수록 권력의 이익이 될것이다.

반면, 지배권력이나 재벌기업의 부조리로 인한 참상은 덮어둠으로 권력응 옹호하는것에서 언론의 선정성은 이중적 모습을 지닌다.

허술한 국방 체계의 문제점이나 나북한 관계점검 등 문제파악의 중요부분보다 국군의 추격상황이 중점이 되는 알맹이가 빠진 보도는 언론의 본질을 파악하게 한다.

실리에 따라 권력에 종속된 언론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지 못함은 당연한 결과이다.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해 자율성을 가진다면, 그 결과 현실을 직시하고 날카롭게 비판한다면 사회 또한 이에 기반하여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변혁하며 자기 모순을 극복하는 사회에서 가장 ‘방송불가’해야 할 모습은 권력이란 바람앞의 등불인 언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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