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다고 그러는데, 도대체 뭐가 변했지? 돈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여전히 억울하고, 살 곳 잃은 빈민들은 여기저기서 죽어가는데…” 몇달 전 친구가 말했다.

시대는 변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왜 모두들 변했다고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거리엔 남의 일엔 무관심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학생시위로 교통이 불편하면 그들이 무엇을 외치는지 듣기보다는 눈살부터 찌푸린다.

반면에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4.11총선관련 비리나. 5·6공 권력형 비리사범의 8.15특별사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문민’이란 두글자는 사람들에게 ‘관용(?)’을 심어주었고 이를 잘 키워낸 이들은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문민=자유민주주의 완성’이라는 등식을 한번쯤 의심하게 하는 사고를 마비시키고, 그 등식이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게 내버려 둔다.

‘무관심’이란 울타리에 둘러싸인 한국사회는 ‘보수’라는 오직 한 목소리. YS집권 전에는 군사정권이 지배권력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경찰이 물리적인 탄압을 가해서는 안되’지만 문민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이미 민주화가 완성됐기 때문에 ‘시위는 있을리 만무하다’는 것.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조용한 제도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벽시장처럼 시끄럽고 활기차야만 한다.

독일의 수상 빌리브란트는 재임시절 “독일의 젊은이들이 현재의 조국에 만족한다면 독일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문민이 들어서서 민주화가 완성됐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는 것인가. 다시 ‘문민=민주화의 완성’이란 등식을 들여다 보면 “국민이 뽑은 정부이므로 어떠한 잘못도 용인될 수 있고, 잘못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는 오만하기까지 한 논리가 숨어있다.

진보적 흐름을 주도해가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완성된 민주화’로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재단해 버리는 문민시대. ‘문민’은 강력한 마법을 지녔는지, 지금시기 이사회는 얼어붙은 호수의 수면처럼 조용하고 잔잔하다.

사회 전체를 둘러싼 마법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어서 마치 동상처럼 가만히 침묵해야만 한다면, 이제는 그 마법을 깨뜨릴 주문을 외워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