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난 여자친구들을 많이 좋아해왔다.

자라는 동안 몸으로 부대끼고 이야기하고 함께 해온 친구들은 대부분 여자애들이었다.

유교적 사상이 지배적인 한국사회의 특수성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남자애들도 그들끼리 곧잘 몰려다니곤 했던 것으로 보아 그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를 우정이라 표현했다.

우정. 이는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져왔다.

동성간의 우정은 바람직한 것이며 도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것이다.

우정이 거론될 때 항상 따라오는 개념이 있는데 바로 사랑이란 것이다.

이상하게도 사랑과 우정이라는 개념해석은 모호한 분리의 색채를 띤다.

마치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처럼 말이다.

그래서 정의 내리기 힘든 이 두 명사들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난 친구를 사랑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사랑의 개념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자연히 분류된다.

동성간의 사랑은 이처럼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어색하게 인식돼왓다.

내재해있는 가족주의에의 안전이 해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건 아니건 강에 이로 인해 은근히 피해받는 또하나의 개념이있다.

바로 이성간의 우정이다.

(마치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자연히 같이 피해를 받게 되는 남성처럼 말이다.

이들 대부분 역시 일부 남성들처럼 또 하나의 계층을 탄압함으로써 자신들이 억압받고 잇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해리는 말했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어? 누군가 손을 들고 잎어한다.

‘이성간에도 우정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동성간에도 사랑이 있을 수 있고요.’그렇다면 물어ㅗㅶㅏ. 그대는 동성애자인가. 손을 든 대부분이 머뭇거릴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동성애모임을 취재하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를 했다.

동행한 기자또한 그랬다고 말한다.

적당히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자위하고 있는 우리들이 임의적 해석상에서 이렇게 대답하는 현상은 당연한 것일수도 잇다.

그래서 묻고싶다.

같은 정도라도 혹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우정’으로, 이성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닌가. 우리가 가진 사고틀은 구체성을 상실한채 왜곡된 모조를 더 믿게하는,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시뮬라크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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