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회색빛 콘크리트벽에 싸인 채 수갑찬 손 굳게 움켜쥐며 좁은 쇠창살 너머로 노동자의 햇새벽이 환하게 솟아오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박노해씨에게.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신문지면을 펼쳐든 저는 「박노래 사형구형」이라는 머릿기사를 접했습니다.

너무도 부당한 소식이었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소식이었기에 신문을 맞이한 저의 눈은 그저 망연자실한 채, 두툼한 원고 뭉치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법정으로 들어가는 당신의 야윈 얼굴에 시력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흔ㄷ늘렸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정부의 부당한 판결에 대한 분노로 당신 손에 전해지지 못할 편지를 써봅니다.

당신을 처음 대한 것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 당신의 첫 시집이었던 「노동의 새벽」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노동자의 절망과 슬픔, 분노와 희망을 커다란 감동으로 보여준 당신의 시는 저의 미천하고 보잘것 없는 경험 속에서 얻어진 어떤 결론보다도 더 뚜렷한 삶의 무게로 다가왔었습니다.

「박노해가 잡혔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던 삭막했던 지난 겨울에서 벌써 절반이 넘는 달수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온갖 악랄하고 비열한 24일간의 고문수사를 이겨내고 당당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주어진 것은 「사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이었습니다.

사노맹이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하고 수령역할을 수행했으며 노동자 중심의 무장봉기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할 목적으로 활동해왔다는 것이 그들의 사형구형 이유였습니다.

노동자로 하여금 임금노예로 전락시키면서 인간다운 삶을 박탈하는 이 사회 속에서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했던 당신의 실천이 「반국가단체의 수괴」역으로 낙인찍혀야 한다니…….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롭다과 주장하고, 자유민주주의가 활짝 폈다는 이 땅에서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보자고 기꺼이 한몸바쳤던 당신이 왜 영어의 몸으로 갇혀야만 합니까. 강경대를 죽인 전경에게는 2~3년의 감형을 구형하면서 당신에겐 사형을 구형하는 재판부는, 오직 횡포로만 권력을 유지하는 정권은 이미 당신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본가가 하룻밤 유흥비로 기백만원을 가볍게 내놓으며 가진자의 품위를 과시할 때 노동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이마의 땀을 훔쳐내야하는 현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민주」의 참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철야노동과 수배생활과 고문으로 앙상해진 당신의 목에 밧줄을 걸 수는 결코 없습니다.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군요. 이제 빼앗겼던 얼굴을 다시 찾는 마음으로 해방의 햇새벽을 그리면서 그만 말을 줄일까합니다.

그날까지 몸 건강하십시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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