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현(교공·4) 이대학보 모니터로 활동한 2학기는 다사다난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학기라 과제가 많았고, 이에 시간을 쪼개가며 모니터 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경험이었고, 좋은 후배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모니터 모임을 했던 매주 수요일 저녁이 즐거웠고, 학보 기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매번 모임을 진행할수록 날카롭게 비판하는 모니터 요원들과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더라도 이대학보 1기 모니터 요원이었다는 이름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 기대한다.

▷정세경(사회·3) 마지막은 언제나 처음을 생각나게 한다.

휴학한 이번 학기 시작 무렵에 학보 모니터 일을 하게 됐고 이제 학보를 가지러 학교에 가는 일도 한번 남았다.

한달에 한번 정도 학보에 글을 실을 때면 뿌듯해지곤 했다.

내 목소리를 담고 있는 원고지 5매의 쪽방만한 공간이 더없이 소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모임을 통해 빚어낸 우리의 생각들이 더 좋은 학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좋았다.

다만 언제나 아쉬웠던 것은 학보 기사 내용에 대한 심층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가 전문 매체비평가가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상희(교육·2) 처음에 모니터에 지원했던 건, 풀어낼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학보는 내게 좋은 소통의 공간이 돼줬다.

만 구천 이화인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학보에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내가 원하는 것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보는 내게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까지도 선물했다.

나는 나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울타리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됐던 것이다.

모니터로 활동하는 것은 학보와 이화에 대한 끈끈한 애증을 재확인하는 기회였다.

한 것 없이 이렇게 많은 것을 얻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는 또 한 뼘 자라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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