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 가을은 유난히 짧다.

두 번의 휴학이 모두 2학기였기 때문일까? 바람 한번에 떨어져 버리는 단풍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4번의 가을은 아직도 아쉽다.

99년 새내기였던 가을에는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불평이 쏟아졌다.

기대보다 낮았던 수능 점수에 돌이킬 수 없는 미련을 가지며 ‘내가 왜 이 학교에 다니고 있나’라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다.

1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괴상한 구조의 학관 건물, 밤이면 문이 잠겨 꼼짝없이 갇히는 도서관도 마음에 안 들었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도피는 흔한 방황으로 이어졌다.

날마다 술을 마시고, 밤새워 채팅과 게임을 하고, 쇼핑 중독에 빠졌다.

재수와 자퇴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화에 머물게 된 것은 어떤 충고 덕분이다.

진덕규 교수님의 ‘글로벌리제이션과 한국의 선택’ 분반 조교는 ‘경험주의자가 되자’는 말을 해줬다.

뭐든지 해내는 완벽주의자도 좋지만, 때로는 수업에 빠지고 하늘을 마음껏 보거나 F 한번쯤 맞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했다.

또한 결석을 한번도 안 하고 모든 과목 A+를 받는 것도 굉장한 경험일 수 있다는 말에, 가슴에 막혀있던 뭔가가 한번에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에 대한 집착 대신, 이화에서의 경험이 인생에 다양한 빛깔을 더해줄 거라는 생각을 갖기로 했다.

99년 대학 최초로 만들어진 웹진 DEW에 들어가 많은 것을 배웠다.

기사를 써서 편집장에게 에디팅을 받으면 빨간 펜으로 죽죽 그어진 줄들에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듯 했다.

글은 좀 쓸 줄 안다고 생각했던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글쓰기의 어려움을 조금은 깨달았다.

DEW의 선후배, 동기들은 여전히 좋은 친구, 멘토 혹은 카운슬러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DEW에서 배운 여러가지 기술 덕분에 휴학하고 벤처 기업에서 일할 수도 있었다.

다른 경험들도 삶을 풍요롭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한때 학교도 가지 않고 빠졌던 채팅과 게임은 후에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 과목을 들을 때 실제 사례를 담아 레포트를 쓸 수 있게 해줬다.

주말에 2박 3일로 다녔던 여행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방황했던 자화상을 쓴 자기소개서가 뽑혀, 한 통신사의 해외체험 프로그램으로 몽골과 바이칼 호수를 공짜로 다녀온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 클럽에서 밤새 춤추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철이 덜 든 5학년이다.

그런 나의 이번 학기 목표는 4.0 학점이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에 꼭 해내고 싶은 경험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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