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6일자 학보의 상록탑은 묻는다.

“확인 사살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이 용어에 무지할 이화인을 위해 ‘시체더미에서 혹시나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적군의 목숨을 완전히 끊는’·‘전쟁터에서의 비정한 전술’이라는 설명까지 이어진다.

왜 한 평범한 대학생인 나는 월요일 아침 펼쳐든 학보에서 ‘확인 불감증’에 걸리지 말고 “적군의 목숨을 완전히 끊으라”는 당부를 들어야 하는가? 왜 채플 학점을 ‘확인 사살’해야 하며, 태풍에게 ‘공격’을 당해야 하는가? ‘확인사살’이라는 단어가 그저 ‘야무진 확인작업’의 동의어로 아무 거리낌 없이 쓰여진다는 것은 군사화된 사회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의 의문사는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진실을 확인해보려는 노력만 있었다면’ 해결됐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채플이나 제방 보수와 함께 묶여 설명될 수 없고, ‘확인 불감증’으로 치환될 수 없는 맥락들과 맞닿아 있다.

그 죽음들을 ‘의문사’로 만들기 위해 가해졌던 억압에 대한 사회적 맥락의 언급 없이, ‘확인 불감증’이라는, 개개인의 책임으로 문제를 축소하는 접근법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어긋난다.

나는 되묻고 싶다.

“군사주의란 말을 들어봤는가?” 그리고 군사주의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 일상 속에 파고든 군사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가기 바란다.

누군가에게 확인 사살은 그저 ‘확인작업’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군사주의의 일차적 피해자인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그것은 폭력과 상처의 아픈 기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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