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가면, 먼저 책을 만난 다음엔 그 책을 이전에 읽었을 사람들을 만난다.

‘러브레터’라는 영화에서처럼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영화가 아닌 현실은 좀 다르다.

한마디로 지저분한 흔적이다.

그런데 줄을 긋고 낙서하는 것만이 책에 흔적을 남기는 유일한 방법은 아닌가 보다.

읽다 쉬어갔음을 알 수 있는 접힌 페이지, 먹다 흘린 음료수 자국, 그리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찢겨진 페이지다.

대부분의 전공서적이나 인기 수험서는 예외가 없다.

구태여 줄을 그어가면서까지 정독할 필요가 없는 책들도 너무 깨끗하면 아무도 읽지 않는 재미없는 책으로 여겨질 정도다.

나도 불과 얼마전 까지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을 한도에서 도서관 책들을 자유롭게 대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도서들에 대해서 아무런 조심스러움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학교 도서관에 있는 얇은 책들은 겉표지가 아세테이트지로 정성스럽게 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다.

단순한 메모지로만 알았던 책 갈피용 간지가 대출실 여기저기에 비치돼 있었다.

그 동안 너무나 무관심했던 나머지 이런 작은 노력들이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졌고, 그만큼 책을 소중히 다루는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학교 도서관 도서는 공중화장실, 공중전화보다도 은밀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중전화와 공중 화장실은 이동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다른 이용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무료로 대출한 책은 집에 가져갈 수도 있고, 반납할 때도 일일이 도서 상태를 확인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도서관 도서는 순전히 우리의 양심에 맡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 도서의 깨끗한 이용에 있어서 양심을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 일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깨끗하고 넓고 많은 도서가 비치돼 편리하고 수준 높은 우리 학교 도서관. 그러나 그해 비해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별로 특별하지 못했기에 앞으로는 모두가 함께 보는 도서관 도서를 만들기 위해 조금 더 배려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전영선(특교·2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