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내게 무해한 사람(2018)

출쳐=예스24
출쳐=예스24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두 번째 소설집인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최은영은 유약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누구보다도 사랑이 가득한 이들을 그려낸다. 순간의 실낱같은 감정을 잡아채어 유려하게 늘어놓는 문장들을 읽고 있자면 곱씹을수록 청춘에 가까운 문장들이라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 지는 흉터들을 용납할 수 없어 타인을 대하는 데 지나치리만큼 세심하고 예민하게 구는 시기이자, 자신이 누군가의 하루를 망치진 않을까 수차례 무력해지는 시기. 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만큼 마주 보고 있는 이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는 마음은 곧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다.

청춘을 지나는 우리는 어떠한가. 끊임없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고도 반짝이는 꿈을 꾸고 있다.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하루의 동력이 되고 마는 것.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밉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이상이라고 부른다. 이상을 투명히 내비칠 수 있는 건 청춘을 지나는 자들의 특권이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기에 이상이다. 마음을 가득 채운 이상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자신에 대한 연민이 단단한 슬픔으로 굳어 만들어진 것이다. 할 수 없이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기에, 지금보다 어렸던 자신을 아프게 했던 존재들과 눈곱만큼도 비슷해지지 않겠다는 울분 섞인 다짐이 뭉쳐진 덩어리이다. 이 뜨거웠던 덩어리가 차게 식어가는 기분을 맞닥뜨리는 건 사회로 몸을 던진 다음이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 이야기인 「아치디에서」는, 또 다른 것을 이뤄내느라 덮어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숙이 끌어안고 사는 이상을 처연히 드러내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민은 한국에서의 간호사 일을 관두고 무작정 포르투갈의 외진 마을 아치디로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랄도가 한국을 떠난 이유를 묻자, 하민은 자신이 일을 관둘 정도로 정말 미워했던 한 간호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하지 않고 환자들의 감정적인 요구에는 아예 등을 돌려버렸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사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 처음에는 환자들의 말도 잘 들어주고 좋은 표정도 지으려고 애를 썼지. 그런데 오랜 시간 삼교대로 일을 하고, 그것도 너무 많은 일을……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블록 하나가 빠진 거야. 아주 작은 블록이었는데 그게 빠져버리니까 중요한 부분이 무너진 거지. 근데 본인은 자기가 엉망이 된 것도 모르는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그런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거야. 그런데 그건 변명이 안 되지. 그런 상황에서도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간호사들이 대부분이니까."

간호사가 되기 전의 하민은 어땠을까.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쏟으며 그들의 아픔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간호사가 되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기 하나 없는 사회에서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야 하고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시간을 거친 이들은 스스로 세운 이상 앞에서 무력해질 때의 처절함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내가 나를 챙길 여유가 바닥났을 때, 이상을 감싸고 있는 두껍고도 단단했던 유리막이 얇아지면서 마치 그런 걸 마음에 품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이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유리막에 흠집을 내는 것은 언제나 그 시간을 지나온 어른이다. 그들 모두가 지나온 그 나이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겐 그들이 다소 버석하게 느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뜬구름이 덧없다 말하는 그들이 이상을 잃었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단지 살아내느라 잠시 덮어두었을 뿐이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현실과 적정선을 찾아 타협해 더는 물렁하게 굴지 않겠다고. 다만 적어도 뜬구름을 가득 끌어안고 청춘을 보냈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잠시 들춰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현실에 녹아드는 것과는 별개로 그때의 뜨거웠던 마음을 지켜내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비현실성이 덕지덕지 붙은 무언가를 꿈꿨던 시간은 모두 유의미하기에 그렇다. 설령 그것이 당장 눈 앞에 닥친 것들을 모두 뒤로한 채 멍하니 허공에 그리는 뜬구름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꿋꿋이 꿈을 꾸자. 한없이 터무니없지만 무엇보다도 반짝이는 꿈을. 지금의 내가 훗날 지쳐버린 나에게 마침내 단단한 응원을 건넬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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