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여행을 갔던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친구들. 제공=전소이씨
함께 여행을 갔던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친구들. 제공=전소이씨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고 오자. 나의 세상을 넓히자! 교환학생으로 파견을 확정 짓고 나서 다짐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는 한국인 친구들이 아닌가. 파견 전에는 외국까지 가서 한국인들과 놀러 다니고, 어울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유럽에 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외국인‘과 친구가 되는 것에는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하며, ’외국인‘에 대한 나의 기준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파견된 학교는 매 학기 많은 교환학생을 수용하기로 유명하다. 23개국 출신의 97명. 올해 겨울 학기에도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렇게 다양한 학생들을 단 두 개의 부류로 나눌 수 있는 단순한 기준이 있다. 바로 ‘생김새’다. 이목구비와 외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 이것으로 동양인과 동양인이 아닌 학생들을 구분할 수 있다.

학기 초반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섞여 있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었다. 나 또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사소한 질문들을 던지며, 열심히 새로운 인종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생김새를 한 사람들끼리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 속에, 그리고 한국인들 틈에 자연스럽게 있는 자신을 스스로 보며 생각해 보았다. 왜 ‘외국인’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을까?

인종이 주는 벽은 생각보다 크다. 유럽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두세 개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러니까 간간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등등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이에서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저절로 위축되곤 한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점은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이다. 함께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종종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가령 대화의 주제가 너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거나 서로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당황스럽기도 답답하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조용함을 선호하는 나에게 매일 시간대와 상관없이 마시는 술과 밤마다 열리는 파티는 심리적인 거리감을 더욱 커지게 했다.

결국 지쳤다. 꿈꿔오던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 급급하여, 정작 교환 생활을 통해 얻고자 했던 ’나를 위한 시간’을 잊은 기분이었다. 숙제처럼 느껴졌던 것들을 잠시 멈추기로 결심한 후, 그동안의 생활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웃기게도, 나에게는 이미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

교환학생 중에 사귄 ‘외국인’ 친구라고 한다면, 모두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같으리라. 짐작하건대, 대부분은 영어를 매우 잘 구사하는 서양인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친구를 사귀기를 바라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 예상한다. 나 또한 그러했으므로. 하지만, 나의 친구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영어로 의사소통하지만, 서로 완벽하지 않다.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생각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나의 외국인 친구는 동양인이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꺼끌거렸던 것들을 멈추었다. 밤마다 있던 파티도, 이해하는 것이 달라 홀로 멀뚱히 서 있던 대화에서도 조금 멀어졌다. 대신 새로운 동양인 친구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도시들로 여행을 다녔다. 건너 건너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인종과 상관없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많은 외국인 친구가 생겼다. 나의 세상은 충분히 넓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노력을 떠올려 보면, 모든 것은 의무감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유럽까지 왔는데, 인생에 한 번뿐일 교환학생 생활인데 등등. 고작 5개월 남짓의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스스로를 계속해서 떠밀었던 것이다. 이미 나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자는 목표 한 가지를 이루었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외국인 친구 사귀기’는 많은 이들의 목표인 동시에 어려운 숙제이리라 예상한다. 목표와 설렘이 짙어지면, 후회와 실망이 커지기 십상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는 의무감이 되고, 이루지 못한 의무는 교환 생활의 가치를 함부로 깎아내린다.

‘인생에 한 번뿐인 교환학생으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의무감이 우리를 너무 짓누르고 있지는 않은가? 친구가 없어도, 동양인 친구만 있어도, 한국인과만 다니더라도 혹은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않았더라도. 스스로가 나름의 만족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잘 해내고 있다. 의무감에 사로잡혀 반짝임을 놓치지 말자. 우리의 교환 생활은 너무나도 짧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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