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란 자기가 번역하는 텍스트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작업이죠. 단순히 언어를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뜨거운 현장의 분위기에 화답하며 열렬하게 강의하고 있는 르 클레지오 작가.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뜨거운 현장의 분위기에 화답하며 열렬하게 강의하고 있는 르 클레지오 작가. 안정연 사진기자

소설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는 “번역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 대상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 번역가가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아니라, 작품 대상과 감정을 공유하고 작품 내용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0월30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의 특강이 열렸다. 본교 통역번역대학원 주최로 국제교육관에서 개최한 특별강연에서 르 클레지오 작가는 ‘나의 수도자 오두막의 추억’이라는 주제로 소설 번역을 통해 조명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을 강연했다. 르 클레지오 작가는 통역번역대학원 최미경 교수(한불번역전공)와의 인연을 통해 한국 소설 번역을접했다.

2007년 1년간 본교 석좌교수로 임용된 르클레지오 작가는 1963년 ‘조서’를 시작으로 ‘홍수’, ‘사막’, ‘황금물고기’ 등 다수의 소설을 출간했다. 1997년 장 지오노상과 퓨터바우상, 1998년 모나코 피에르 왕자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8년에는 ‘새로운 출발과 시적 모험, 관능적 환희의 작가이자, 지배적 문명 너머와 그 아래에 있는 인간의 탐구자’라는 평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르 클레지오 작가는 “잘 번역된 작품을 읽으면 그 나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애란 소설가의 ‘달려라, 아비’를 통해 한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이해했고,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채식을 하는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 간의 갈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르 클레지오 작가는 “화해, 오해, 욕구불만 같은 복잡한 관계들로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 작가는 소설 번역의 힘을 강조했다. 번역은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 한국의 역사까지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르 클레지오 작가는 윤동주 작가의 ‘별 헤는 밤’ 시 구절 중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구절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시대적 텍스트를 반영하면 “잔인한 현실 속에서도 마음속 희망을 간직한 청년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 작가는 “다양한 한국 번역 작품들을 접하며 서울을 배워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의 어두운 골목길, 용산 시장의 시끌시끌한 거리, 건물 지하의 작은 설렁탕집 그리고 한우리집 기숙사 방과 복도의 모습 속에서 서울 도시에 대한 익숙함을 느꼈다. 르클레지오 작가는 다양한 번역 작품들을 통해 배운 서울의 모습을 ‘빛나 서울 아래’ 제목의 단편소설에 녹여 출판했다.

끝으로 르 클레지오 작가는 번역가로서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말했다. 그는 “번역가란 직업은 번역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독자가 소설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번역 대상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르 클레지오 작가는 “현대사회의 이해와 공감 부족 문제 속에서 번역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며 “번역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번역에 대한 르 클레지오 작가의 열정만큼 현장 분위기도 뜨거웠다. 특강 이후 진행된 책 사인회에 참여한 이지현(국문·19)씨는 “프랑스 문학가를 직접 본 점이 신선했고 통번역이라는 진로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하나(불어불문학 전공 박사과정)씨는 “평소 존경했던 작가의 설명에서 번역에 대한 작가의 사명을 엿볼 수 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