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24일 뉴욕을 포함한 전시장 네곳에서 진행된 제48회 이서전. 서양화과 1회 졸업생부터 신진 작가까지 본교가 배출해낸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자빈 사진기자
17일~24일 뉴욕을 포함한 전시장 네곳에서 진행된 제48회 이서전. 서양화과 1회 졸업생부터 신진 작가까지 본교가 배출해낸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자빈 사진기자

“전쟁을 겪어내고 산업 발전에 동참했던 시절을 지나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어 낸 그녀들에 이어, 이제는 세계적인 한국을 이끄는 그녀들의 후배들이 모여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제48회 이화여대 서양화과 전시회(이서전)를 소개한 전남도립미술관장 이지호(서양화⋅84년졸)씨의 글이다. 이서전은 2년에 한 번, 본교 조형예술대학 서양화과 동창회(이서회)에서 주최한다. 이번 이서전은 ‘Chronicles: 그.녀.들.의.이.야.기’를 주제로 지난 17일부터 24일까지 본교 이화아트센터, 이화아트갤러리, ECC대산갤러리에서 열렸다. 한편 U.S.이서회는 미국 뉴욕 뉴저지 민권센터 MK Space에서 ‘Chronicles:On The Road’ 전시를 2일부터 27일까지 동시진행했다. 1949년 졸업생부터 2023년 졸업생까지 총 132명이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78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예술의 꽃을 피워낸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들의 이야기, 이화의 연대기

1945년 이화여자전문학교에 미술과가 생긴 후 1949년 서양화과에서 첫 졸업생이 탄생했다. 이후 본교 서양화과는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 왔다. 이번 이서전에는 서양화과의 1기 졸업생인 신금례(서양화⋅49년졸), 한진수(서양화⋅49년졸)씨가 참여했다. 두 사람은 올해 98세, 97세의 나이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한진수씨의 '장미'(1994), 이경순씨의 '여러 가지 들꽃들'(2006), 신금례씨의 '여름'(1999). 이자빈 사진기자
왼쪽부터 한진수씨의 '장미'(1994), 이경순씨의 '여러 가지 들꽃들'(2006), 신금례씨의 '여름'(1999). 이자빈 사진기자

신씨의 작품은 ‘여름’(1999)이다. 중앙에 풀을 놓고 푸른 빛감을 살린 그림을 그렸다. 신씨는 2020년까지 환기미술관에 개인전을 열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한씨의 작품은 수채화로 그려낸 ‘장미’(1994). 그는 1968년 본교에서 정년퇴임한 명예교수다. 바로 다음 해의 졸업생 이경순(서양화⋅50년졸)씨는 ‘여러 가지 들꽃들’(2006)에서 화병에 꽂힌 꽃을 그렸다. 이씨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초대작가이기도 했다. 세 사람 모두 미술계의 거장으로, 후학 양성을 위해 힘써왔다. 관객이 이들 작품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이화아트센터 한쪽에 나란히 배치했다.

이서전에는 원로작가부터 신진작가까지, 78년 동안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들의 작품이 담겼다. 조형예술대학 이화아트센터와 이화아트갤러리에서 조기주(서양화⋅79년졸)씨, 김홍식(서양화⋅85년졸)씨, 박형주(서양화⋅91년졸)씨와 같은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ECC대산갤러리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 행사를 총괄한 송은주 이서전 회장(서양화⋅86년졸)은 1949년부터 2023년까지 졸업생을 만나며 미술사의 흐름을 체감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흡수하는 이미지나 형상, 색감이 굉장히 다르다”며 “선배 입장에서는 다양한 젊은 작가를 접하며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ECC대산갤러리
ECC대산갤러리 안 이서전의 풍경. 이자빈 사진기자

 

QR코드와 온라인 전시로 더 친절하게

작품만 걸었던 지난 전시들과 달리, 이번에는 온라인을 활용했다. 온라인 전시장을 따로 열고, 작품과 작가 연혁을 볼 수 있는 QR코드도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알리고 싶어서다. 올해 이서전이 본교에서 열린 것도 특이한 점이다. 제47회까지는 대개 외부 전시장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학부생들에게 서양화과 동창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자긍심을 높이고 싶었어요. 또 우리가 밖에서는 개인 활동을 하지만 언제든 다시 끈끈하게 모일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요.”

이서전을 감상하는 관람객. 
이서전을 감상하는 관람객. 이자빈 사진기자 

이서전은 최초로 미국 뉴욕 뉴저지 민권센터 MK SPACE에서 동시 진행됐다.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U.S.이서회가 뉴욕에서 전시를 진행한 것이다. 전시에 실린 작품 역시 온라인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뉴욕전을 총괄한 이윤정(서양화⋅90년졸)씨는 이서전을 “그녀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하며 서로에게 원동력이 되는 전시”라고 말했다. 또 “이번 전시뿐만 아니라 동문들이 해외에서 활약하는 것에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1기 졸업생부터 아이 엄마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

올해 처음 이서전에 참여한 박선(서양화⋅12년졸)씨. 그는 전북 완주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며, 논밭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1회 졸업생부터 올해 졸업하는 대학원생까지 작품활동이 연결돼 있는 걸 보면서 이화 서양화과의 맥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어요.”

이서전에서 ‘나비’(2023)를 그린 임형순(서양화⋅97년졸)씨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평범하게 두 아이를 키우던 엄마였는데 훌륭한 선후배님과 이렇게 작품을 걸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다”며 “이서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서전에 참여한 작가들의 사진. 제공=송은주 회장
이서전에 참여한 작가들의 사진. 제공=송은주 회장

송 회장은 “이화의 여성들이 오랜 시간 살아가며 세상의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존재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을 것”이라며 “연로한 선배들도 지금까지 활동하는데, 그 삶의 많은 격차를 한 곳에 담아낸다는 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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