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경계에 있는 로스펠트 산에서 노래를 부르는 마리아와 아이들 출처=영화 사운드오브뮤직 스틸컷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경계에 있는 로스펠트 산에서 노래를 부르는 마리아와 아이들 출처=영화 사운드오브뮤직 스틸컷

“음악 공부하러 가는 거야?” 오스트리아 교환학생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단언컨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아예 아니라고는 대답할 수 없겠다. 그 옛날부터 흥얼대던 콧노래, 그저 해맑기만 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나의 낭만. 하지만, 처음부터 오스트리아를 바라보며 교환학생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교환학생 파견 확정 후 매일같이 생각했던 말이다. 토플만 잘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이 됐다고 해서 파견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원하는 학교 10개를 작성한 후 그중 한 곳에 배정받아야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다. 함께 지원하는 학생들의 성적을 알 수 없기에, 이 리스트 작성은 가장 어려운 단계로 불리기도 한다.

나의 첫 선택은 독일이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곳, 물가가 저렴한 곳, 교통이 좋은 곳. 내가 바라는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었고 유학생이 매우 많은 국가이기도 하기에 큰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다. 국제교류처에서 제공한 학교 정보 파일의 다른 나라들은 잘 살펴보지도 않았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파일을 보다 ‘오스트리아’라는 국가명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그 다섯 글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열 살 무렵, 집에 있던 DVD로 우연히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접했다. 7~80년대 특유의 자글자글한 화질과 중독성 강한 음악이 마음에 들어 다섯 번도 넘게 돌려보았다. 종종 ‘도 이스 디어(‘Do-Re-Mi’ 곡의 앞부분 가사)’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당시 내가 매일 같이 가던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운영 시간이 끝날 때가 가까워지면 영화의 OST 중 하나인 ‘So Long, Farewell’ 노래를 틀어주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일상을 보내다가 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노래가 나오면 집에 오는 것. 당시 나의 일상은 주인공인 트랩 가족과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TV 프로그램 덕에 영화의 촬영 배경이 오스트리아라는 것을 안 후로부터는,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한 번쯤은 가서 영화 촬영지를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스트리아와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는 기억 속에 흐릿해졌다. 간간이 흥얼거리는 ‘도 이스 디어’ 콧노래를 제외하곤.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후, 오스트리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독일과는 조금 달랐다. 유학생 수가 비교적 적었고, 관광지로 크게 발달한 것도 아니었다. 정보를 찾는 것이 조금은 어려웠지만,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원래 색다른 길이 더욱 흥미로운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알게 된 오스트리아는 치안이 좋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물가에 교통이 잘 되어 있으며,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곳이었다. 모든 조건이 마치 나를 위한 것인 양 맞아떨어졌다.

오스트리아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이다. 알프스산맥이 이어져 있고, 내륙지방이지만 큰 호수가 많다. 알프스산맥 덕분에 물이 깨끗하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한국에서 생활하면 느끼지 못하는 점이지만, 석회수가 넘쳐나는 유럽 지역에서 깨끗한 수돗물이란 마른하늘에 단비와 같다.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곳인 만큼, 음악과 예술 또한 발달하여 있다. 한국에서도, 홍대보다 북촌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의 싱그러움과 여유가 가득 찬 오스트리아로 속절없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로 마음을 바꾼 것은 유년 시절에 대한 먹먹한 향수이자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던 객기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실제로 고등학교 선택 당시, 도보 5분 거리의 고등학교 두 개를 뒤로하고, 버스로 30분이 걸리는 학교를 선택한 적이 있다. 사유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와 같은 로망을 실현하고 싶어서였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끊임없이 온다. 최고라고 생각했던 선택지가 사실은 아닐 때도 있고,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더 나은 것이었을 때도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라고들 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새로움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세상은 넓고, 어느 한 곳이 운명처럼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오스트리아로 교환을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그런데도 운명처럼 다가온 오스트리아에, 나의 교환 생활을 맡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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