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구에서 한아뿐(2019)

출처=YES 24
출처=YES 24

 

수상하다. 남자친구가 여행을 다녀온 뒤로 달라졌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

스무 살 때부터 11년간 만난 경민은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한아보다도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한 그런 남자였다. 그 성격 어디 안간다고, 경민은 유성우를 보기 위해 한아를 두고 캐나다로 떠나버렸다.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그를 기다리던 중,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그래도 ‘사랑하는’ 경민이었기에 걱정하며 전화도 걸어보고 문자도 보내 봤지만 돌아오는 소식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은 한아를 찾아왔다. 어딘가 많이 달라진 채로. 팔에 있던 흉터도 사라졌고, 그렇게 싫어하던 가지도 맛있게 먹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한아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수상한 이 남자, 진짜 내 애인이 맞는 걸까? 의심의 몸집이 불어나 터지기 직전, 수상한 경민은 한아를 수상한 장소로 데려갔다. 으슥한 산, 그 중에서도 매우 으슥한 장소로.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정체를 밝힌다. 실은 내가 ‘외계인’이라고. 정말 황당한 말이었다. 더 황당한 점은 외계인 경민의 본모습이 광물이라는 것이었다. 그 작은 광물은 2만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서 아주 작은 행성인 지구, 그 안에서도 작은 나라인 한국에 사는 한아를 관찰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외계인 경민이 살던 행성에서는 서로가 연결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즉, 2만 광년이나 떨어진 별 전체가 한아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사람 경민은? 자신의 모험심이 더 중요했던 사람인 경민은 한아를 두고 광물 외계인과 거래를 해 우주로 떠났다고 한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이기적인 남자였다. 나를 두고 간 남자, 나보다도 꿈이 더 중요한 남자, 그 남자의 외형을 한 외계인이 눈 앞에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같이 살아보기로 한 한아는 외계인 경민과 생활을 하며 점차 그와 사랑에 빠진다. 외계인 경민과 살며 삶이 많이 독특해졌지만 한아는 한아대로 삶의 중심을 잡아가며 살아간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을 지키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구로 온 광물도 한아가 사랑하는 일들을 도와줬다. 조금은 특이한 외계인의 방식으로. 여러 우여곡절 끝에 한아와 외계인 경민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 행복하고 잔잔하게 늙어간다.

황당하고 사랑스러운 이 소설은 우리에게 우스꽝스러운 소재로 한없이 큰 사랑과 감동을 선물해준다.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한 행성이 주는 크고 특별한 사랑, 그 사랑을 받는 한아는 분명 특별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한아를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마치 그 누구든 한아가 될 수 있고 누구든 행성만큼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도 특별하고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내가 네 옆에 있는 바보 인간보다 더 가까울 거라고, 그런데 그걸 넌 모르니까, 전혀 모르니까, 도저히 잠들 수 없었어.”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 나는 탄소 대사를 하지 않는데도 네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싶었어. 촉각이 거의 퇴화했는데도 얼굴과 목을 만져보고 싶었어. 들을 수 있는 음역이 아예 다른 데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행성을 뛰어넘는 사랑, 종을 뛰어넘는 사랑. 본 적 없는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랑은 지구에도 존재한다. 강아지가 주는 사랑, 고양이가 주는 사랑, 이구아나가 주는 사랑. 너는 동물이고 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랑을 느끼고 나눌 수 있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몰라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사랑만은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줄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님이 주는 사랑, 친구가 주는 사랑, 동물이 주는 사랑을.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은 이 ‘지구에서 하나뿐’인 존재니까. 지금은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당신이 느끼지 못할 사랑을 주고 있을 테니까. 온 행성이 그리고 온 세상이 하나뿐인 또 하나의 한아,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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