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에 인생을 맡기지 마라.’ 학창 시절 친언니의 책상 앞에 붙어있던 사설의 제목이다. 공부하기 싫을 때면 몇 번이고 고개를 들어 그 칼럼을 다시 읽었다. 그 스크랩의 잔상 때문인지, 나는 내 인생을 흐르는 강물에 맡기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항상 자유를 갈망하던 학생이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책임감에 응답하는 삶을 시시하게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했고, 납득가지 않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이였다. 다행히 좋아하는 것의 범주가 넓었던 터라, 고등학생 시절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가능성을 확장했고 ‘이화’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들어왔다. 이 울타리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창창한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아뿔싸. 마치 게임에서 지금까지 내가 획득한 무기를 버리고 새로운 전쟁터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뭐라도 해야하는 성격 특성 상 과동아리, 학생회, 다양한 전공 수업, 동기들과의 만남에 몸을 가져다 놓았다. 서울시 1인 가구라는 정체성도 새롭게 생겼기에 나에게 스무살은 ‘변화’ 그 자체였다. 다행히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주고받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 나를 서울에 발붙이게 해주었다.

그러다 일 년 전 이쯤, 여름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학교에서 도망쳤다. 인터뷰 촬영을 마치고 수업을 들으러 향하는 길목에서 눈물이 났다. 사진부 신입 기자, 단편영화 동아리 회장으로서 여러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과도한 업무로 인한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손발이 꽁꽁 묶인 것 같은 답답함. 이런 마음으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동아리방 문을 열자 친한 동기가 보였다. 심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동기에게 답이 정해져 있는 상담을 의뢰했고, 동기는 당연히 내 편을 들어줬다. 부모님께 전화해 내 상황을 설명하고 1시간 만에 중도 휴학 버튼을 눌렀다. 사정을 들은 한 선임기자분이 “자빈님만의 갭이어를 가지는 거네요”라고 했던 말이 위안이 됐다.

아쉽게도 이 기회를 발판 삼아 밀도 있는 휴학 생활을 보내리라는 희망은 무너졌다. 일주일에 평균 2개씩 잡히는 촬영 일정과 동아리 영화제 준비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쉬지도, 열심히 일하지도 못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휴학을 핑계로 내려놓았던 다른 활동들이 꾸준히 죄책감으로 작용했다. ‘맡은 일을 놔두고 어떻게 도망갈 수 있냐’는 누군가의 질책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평소보다 느린 템포로 살아갈 수 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무슨 계획이 있어서 휴학한거냐” 묻는 말에 시종일관 “별 계획 없었다”고 답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휴학 사유에 나의 ‘쉼’은 당연히 분류될 수 없었기에. 영화 현장을 경험하고자 다양한 직군에 지원했었는데, 아쉽게도 그들은 휴학생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의상팀 면접에서 면접관이 “이화여대 나와서 왜 영화 현장 일을 해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휴학생의 신분이란 그런 것이었다. 언젠가는 학교에 돌아가야 하지만, 잠시 학교 밖 대학생이 되는 것. 누군가는 휴학생의 신분으로 엄청난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저 학교로부터 도망친 한 명의 학생일 뿐이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지나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복학생'답게 학교로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힘겨웠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힘겨워도 취재가 잡히면 나가야하는 법. 촬영이 있는김에 학보실도 들르고, 수업도 듣고, 밥도 먹고. 하루를 어찌저찌 마무리하게 됐다. 아마도 수업을 들으러 간 날보다 학보실로 출근했던 날이 더 많지 않았을까. 지금은 완연한 고학년의 삶의 궤도에 들어왔다. 제일 고참 기수가 된 기념으로 사진부장이라는 직함까지 달게 됐다. 찍은 사진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 보면, 첫 학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취재원에 대한 애정을 어느 사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어진 시간만큼만 형식적인 구도로 찍고 취재의 최전방에서 물러났다. 다음 학기에는 애정을 가지고 취재원의 시선에 응답하려고 했다. 지금은 다행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사랑스러운 사진부 기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일 년 전 그 도주의 원인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원인을 찾고자 여러 시도를 해봤는데, 그중 제일 효과가 좋았던 방법은 ‘요가’다. 운동으로 접근하자면 요가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요가 매트 위에 서 있는 시간은 내 심신안정에 제일 효과적이다. 손발이 묶인 것 같은 답답함에 학교로부터 도망쳤지만, 지금은 스스로 나를 묶어놓고 명상에 임한다. 가부좌 자세로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이 날개를 달고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 준다. 그렇게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야 할 시간도, 생각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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