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서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
정재서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

신화학자, 중문학자. 본교에 1984년부터 33년간 재직하고 2017년 은퇴했다. 현재 본교 명예교수이자 영산대 석좌교수로 있다. 국내 최초로 중국신화의 고전 『산해경』을 역주하고 연구하여 학계와 문화계에 동양신화 및 상상력의 붐을 일으켰다. 저서로 『이야기 동양신화』(2004),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2007), 『동아시아 상상력과 민족서사』(2010) 『산해경과 한국문화』(2019) 등 다수가 있다. 비교문학상(2008), 우호 학술상(2008), 이화학술상(2015) 등을 수상했다. 

명색이 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학자더러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엄청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것 같지만 머리를 짜내보아도 의외로 할 말이 많지 않은 것은 웬일일까? 아마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시대에 독서 행위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어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진부한 말이 되기에 십상이기 때문 아닌가 한다.

가령 어릴 적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슬퍼서 울기도 했고 ‘알프스의 소녀’를 읽고 따듯한 흰 빵과 갓 짠 우유를 먹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다들 그랬다는 거였다. 결국 무슨 책을 읽었더니 어떻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로부터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귀결을 맺는 뻔한 이야기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운이 좋으면 이 진부한 도식을 탈피할 수도 있으니 나름의 생각을 펼쳐보고자 한다.

독서에서의 ‘독(讀)’은 읽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읽는다. 마음도 읽고, 그림도 읽고, 풍경도 읽는다고 말할 수 있듯이 읽기의 대상은 무수하다. 그중에서 특히 ‘서(書)’, 곧 글로 이루어진 책을 읽는다고 할 때 독서의 근원적 의미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문자이다. 문자가 없던 원시 시대에는 모든 것이 구전됐고 듣는 행위가 중요했다. 이때는 읽어야 사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살았다.

그러다 문자가 발명됐다. 동양의 한자는 갑골문(甲骨文)이라는, 점을 칠 때 쓰는 글자로부터 시작됐으므로 문자의 탄생은 신비한 힘, 곧 종교성과 관련이 깊다. 서양의 알파벳이 페니키아 상인의 손에서 나왔으므로 상업적인 필요에서 발생했다고 하지만 서양 문자도 보다 깊이 헤아려 보면 종교성과 만난다. 고대의 룬(Rune) 문자 등에서 보듯이 글자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영어에서 글자를 뜻하는 ‘spell’이란 단어가 주술을 건다는 의미를 함유한 것은 그 흔적이다.

 

독서란 글자의 신비한 힘과 접촉하는 행위

새 시대 생존능력인 상상력, 이미지, 스토리

인문학의 원조인 신화와 고전으로 키워야

그렇다면 문자가 가진 신비한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문자는 인간의 의식을 재편하고 사회를 시스템화하여 원시 사회를 국가로 나아가도록 추동했다. 반면 무문자 사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버드대의 장 광즈, 버클리대의 데이빗 키틀리 교수 등 고고학자들은 갑골문이 어떻게 은(殷)나라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를 조직화하는 데 작용하여 최초의 정복국가를 성립시켰는지를 논증한 바 있다. 우리는 글을 읽는 행위, 곧 독서의 이면에 담긴 이 근원적인 무시무시한(?) 힘에 대해 새삼 인식하고 그것을 나의 발전의 동력으로 전유(專有)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서란 신비한 변혁의 에너지와 끊임없이 접촉하는 행위이기에.

독서가 갖는 근원적 힘을 인식했다면 어떻게 그 힘을 효과적으로 전유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떻게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옛날 사람들은, “책을 백번 읽으면 뜻이 절로 드러난다(讀書百遍義自見)”라든가 “‘맹자’를 삼천 번 읽으면 머리에서 ‘툭’ 하고 글의 이치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라는 말도 있듯이, 논리보다는 감성 인식에 호소하는 독서 방법을 택했다. 가령 조선 현종 때의 걸출한 시인 정두경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글 1편을 골라 수없이 읽고 외워 문호가 됐다고 한다. 바야흐로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감성 능력을 고양하기 위해 이러한 독서 방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이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시의성, 곧 지금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 시대인가 하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논리의 시대에서 감성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특히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 혹은 메타버스 시대로 진입하면서 ‘상상력’, ‘이미지’, ‘스토리’의 능력은 무엇보다 긴요한 생존능력이다. 향후 수십 년 이내에 현재 직업의 70% 이상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이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려면 바로 위의 세 가지 능력을 길러야 한다. 상상력은 창의적 아이디어의 원천이고, 이미지의 매개가 일상화된 시대에 이미지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미래의 ‘Dream Society’를 구현하는 무기가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롤프 옌센이나 유발 하라리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당연한 사실이다.

이 세 가지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용서나 처세서 혹은 첨단의 기술서가 아닌, 인문학의 원조인 신화와 고전을 읽어야 키울 수 있다. 창의력의 귀재로 시대를 선취하여 에디슨에 필적하는 위업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 스티브 잡스가 주목한 것도 인문학이었다. 그는 애플사의 제품에 인문학이 들어가야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물질(기계)과 인간이 교감하는 시대에 인문학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체득했던 것이다. 상상력, 이미지, 스토리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케케묵은 신화와 인문학 고전에 그 원형이 담겨 있고 그것이 시대에 따라 끝없이 변주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독서를 통해 그 원형을 장악하면 앞으로 도래할 변혁의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쉽사리 얻게 될 것이다.

글머리에서 우려한 진부한 패턴의 반복을 과연 탈피했는지 모르겠다. 벗어난 듯하다가 결국 다시 본래의 패턴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독서를 통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감성 인식으로 독서를 하라는 것인지, 능력자가 되려면 신화와 인문학 고전을 읽으라는 것인지 결론은 독자들의 몫이다.

정재서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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