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여름 계절 강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개인들은 역사의 흐름 위에 있고, 사회의 패러다임 아래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지만,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아오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중고등학생 때 역사는 나에게 그저 암기해야 할 텍스트일 뿐이었다. 시험 3일 전에 시작해서 미친 듯이 머릿속에 구겨 넣어지고, 시험이 끝나면 휘발되어 버리는 과목이었다. 상황에 대한 작은 이해와 각종 왕과 정부가 시행한 정책, 전쟁 상황 등의 암기만으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역사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내었는지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역사를 관망하는 태도로 외우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과거의 사실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취했다. 대학에 와서 교양 수업을 듣고 나서야 올바른 태도로 역사를 대하게 되었고,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읽고 나서야 역사를 살았던 개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교양 강의에서, 나는 인과성을 배웠다. 사회적으로 어떤 정서와 문화의 원인이 되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서와 문화 아래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버텨야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버티며 사는 것은 또 다른 일의 원인이 된다. 나는 내가 몰라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많았고,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예제도나 신분제의 사회에서 그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처럼, 지금 사회에서도 우리는 문제 인식조차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5·18 민주항쟁을 다루는 소설에서, 나는 개인들의 삶에서 역사적 사건의 영향력이 얼 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5·18 민주항쟁의 시위가 이루어지던 기간은 잠깐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사건이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그들의 남은 삶 전체에 걸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살, 고문, 죽음 같은 단어를 글자로만 볼 때는 그 무거움을 체감할 수 없다. 소설을 통해 나는 그것들의 실체를 보다 자세히 알고 느낄 수 있었다. 무장한 군인이 아이고 임산부고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무자비하게 공격했던 것, 죽인 시민을 처리했던 방법,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내며 고문했던 것, 원하면 죄가 있든 없든 사람을 잡아가고 때릴 수 있었다는 것. 소설의 설명들은 교과서만으로 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을 촉발했다. 개인의 삶이 거대한 권력에 의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도 다른 종류겠지만 그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겪게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대학에 와서야 나는 시민이라면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다소 상투적일 수 있는 문장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뉴스와 기사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돈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닌데 무엇을 할 수는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열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였으면 애초에 문제가 아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그런 생각이 남아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회의 담론이나 분위기는 직접적인 영향력이 있는 사람만이 만드는 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만드는 거니까, 적어도 나는 망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을 단편적으로만 보고 단정 지을 게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많이 알아보고 파악하려고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가 안타깝고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많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부쩍 서로를 미워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에 목적을 두는 형태의 일도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 해결이 목적이 아닌 소모적인 갈등도 많아 보인다. 가끔 댓글들을 보면 어지러워지고 답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아마 올해만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매년 관심을 가졌다면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이 계속 많았을 것이다. 대학에 오니까, 대입이 끝나니까, 관심을 쓸 수 있는 분야가 넓어졌고 그래서 지금에야 보이는 것 일테다.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시험, 성적, 진로, 친구 정도만 신경 쓰고 살다가 이제 나 말고 밖의 상황도 생각해 볼 필요가 생긴 것이다. 내가 사는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그 흐름에서 나는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뭐 이런 것들까지 고민할 수 있 는 여력이 이제는 충분히 생겼고, 없어도 가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면 우리는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사나 뉴스를 보면, 화가 나기도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기도 하다가, 외면하고 나의 일상만 살고 싶기도 할 것이다. 감정적 피로에 잠시 창을 닫더라도, 무력감에 회의를 느끼더라도, 사회의 문제가 나의 우선순위가 아닐 때에도.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대부분의 사건들은 마치 먼 남의 일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남이 사는 그 사회도 내가 있는 곳이고, 내가 겪을 어떤 일들도 결국 그 사회 안에서 일어난다. 개인의 일들이 모여 사회가 있는 것이니까, 남의 일을 외면할수록, 사회의 문제들을 외면할수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개인들은 각자의 사회에서 힘들어질 것이다. 관망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없다. 똑바로 들여다봐야, 애정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봐야, 남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아야, 중요한 순간에 더 나은 선택들이 모여 더 나은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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