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2023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카라바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 출처=런던 내셔널갤러리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카라바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 출처=런던 내셔널갤러리

 

시작하며 : 우리는 왜 미술관에 갈까?

영국 내셔널갤러리는 세계 대전 시기에도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한다. 불안한 현 실 속 사람들을 위안해주는 존재가 바로 ‘미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등장한 미술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의 변화도 알 수 있다.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명화전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그려왔고,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르네상스, 인간 곁으로 온 신

명화전은 시대순으로 전시되는데 르네상스 시대로 1부를 시작한다. 인간 중심의 르네 상스 시대 화가들은 인간과 같은 신체 비율로 신을 그려내거나 실제 인간 세계의 공간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려, 신에게 ‘인간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신’을 그렸다. 주로 신화의 장면을 주제로, 신들의 모습은 어딘가 온화하고 평화로운 표정이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를 통해 위안을 얻었고, 현실과는 반대되는 평화로운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시대, 다양한 시선

2부는 종교 개혁시기로, 신들에게 ‘인간미’가 더욱 더해졌다. 신들은 이제 강렬한 풍부한 표정을 하고 있다. 활에 맞아도 평화로운 표정을 유지하던 신들이, 이젠 몸부림치며 아파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이는 당시 등장한 ‘바로크 양식’과 관련 있는 것으로, 강렬하고 역동적인 화풍을 말한다. 카라바조의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 대표적이다. 또, 베케라르는 ‘4원소’ 시리즈에 서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풍족하게 먹거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생동감있게 그렸다. 사람들은 신과 더불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림을 보다 ‘인간미’있게 그려내며, 인간의 불완전성과 감정을 화폭에 드러냈다. 이를 보아 사람들은 이상적인 신이 아닌 현실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개인의 삶, 기념하고 추억하며

3부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초상화의 증가이다. 당시 유행한 리본과 레이스 가득한 패션의 귀족들이 자신의 모습을 남긴 초상화를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화가들은 윤기 나는 비단과 섬세한 레이스를 담아내는 묘사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반 다이크의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가 있다. 이제 화가들은 인간을 주로 그리며, 작품의 중심 소재가 된 인간을 치장하고 꾸미는 데 시간을 쏟았다. 또한 사람들은 그림 속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권력 있는 존재로 보이는가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즉 당시 사람들은 신이 아닌 자신의 성공한 모습을 통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으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인상주의, 평범한 순간을 빛나게

전시의 마무리인 4부는 인상주의 시대를 다룬다. 이 시대로 오면서 큰 변화는 그림의 시점이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뀌었단 것이다. ‘내’가 보는 장면들에 대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은 실제 예술가들의 교류 장소였던 카페 콩세르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그대로 담은 채 그렸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장면을 담지 않고 마네의 심상 속의 빛의 반사와 사람의 움직임을 반영해 흐릿한 인상을 주는 그림은 마네만의 경험과 시선을 보여준다. 인상주의 시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가 아닌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관찰하고 표현하고 있다. 또 일상의 장면들을 그리는 모습을 보아, 사람들은 평범한 자신의 순간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일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며 :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 그 다음은

내셔널갤러리의 그림들을 시대순으로 살피며, 인간이 위안을 얻는 방법이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시간이 된다면 이번엔 현대 미술 전시를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인상주의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유행한 화풍과 그림들을 보면 추가적인 추측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미술을 통해 위안을 얻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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