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정구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예종 영상이론과와 베이징대 중국어언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런던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부터 본교에 재직하면서 중국어권 영화 및 동아시아 영화, 중국어권 대중문화와 시각 문화 등에 대해 강의·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적대와 연대: 홍콩영화 <십년>(十年, 2015)과 지역 정체성의 (재)구성」(2020), 「놀이로서의 민족주의, 혹은 인정투쟁의 병리학-『아이돌이 된 국가』 읽기」(2022) 등이 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는 꽤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읽는 데 몰두하다 밥 먹는 것도 잊고 좋아하던 TV 프로그램도 놓치기 일쑤였다. 정말이지 읽고 또 읽었다. 여기까지만 쓰고 보면 무슨 대단한 독서광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읽는다’의 목적어가 만화책이었기 때문이다.

만화책을 많이 읽게 된 것에는 사실 아버지의 책임이 컸다. 아버지는 매달 잊지 않고 <소년중앙>을 사다 주셨는데 <소년중앙>은 당시 소년 소녀들의 교양을 책임지는 ‘힙한’ 잡지였다. 교양지답게 ‘종이컵으로 로켓 만들기’,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찾아서’ 같은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했지만 정작 내 관심사는 별책 부록인 만화 모음집 ‘보물섬’이었다. 보물섬은 문자 그대로 보물 같은 만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기공룡 둘리’도, ‘달려라 하니’도, ‘맹꽁이 서당’도 모두 보물섬에서 만났다. 어린아이의 조그만 손으로는 움켜잡기 버거울 만큼 두꺼운 잡지였지만 다 읽고 나면 아쉬운 마음에 읽고 또 읽었다. 너무 많이 읽어서 지루해지면 스케치북을 펴서 둘리나 또치의 얼굴을 그려보기도 하고 다음 호에는 무슨 이야기가 이어질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중고교에 진학하면서 ‘보물섬’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아이큐 점프’와 ‘코믹 점프’가 이어받았다. ‘아이큐 점프’는 이현세, 황미나, 김형배 같은 대단한 만화가들은 물론 ‘드래곤볼’, ‘란마 1/2’ 같이 어마어마한 일본 만화들을 연재하고 있었다. 당시 아이큐 점프의 라이벌이었던 ‘코믹 점프’에서는 전정한 시대의 바이블, ‘슬램덩크’를 연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도 놓칠 수는 없었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는 대부분 두 잡지가 늘 비치돼 있었고, 잡지가 발행되는 날이면 언제나 떡볶이를 먹기 위한(이라고 쓰고 ‘만화를 보기 위한’이라고 읽는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엔 만화책을 보기가 훨씬 수월했다. 동네마다 우후죽순처럼 만화 대여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산에서 신림동까지 2시간 거리를 통학하는 그 시간이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동네 대여점에서 만화책 세 권을 빌려 지하철을 타는 게 루틴이 됐다. 만화책을 읽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기도 했고 걸으면서 읽다가 전봇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이렇게 2년이 지나자 우리 동네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는 만화책은 거의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가끔은 학교 근처 만화방에 파묻혀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탐독’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을 함께한 만화 목록에는 ‘남벌’이나 ‘열혈강호’ 같은 한국 만화, ‘영건’ 같은 대만 만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역시 일본 만화였다. 토리야마 아키라, 이노우에 다케히코, 아다치 미츠루, 우라사와 나오키, 후루야 미노루, 이토 준지, 우스타 쿄스케, 후쿠모토 노부유키, 하라 히데노리…. 정말이지 모두 굉장했다. 나에게는 톨킨이자 롤링이었고 셰익스피어이자 톨스토이였다. 장르도 다양하고 소재도 참신했다. ‘갤러리 페이크’로 세계 미술사를 공부했고 ‘신의 물방울’을 보고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해피’를 통해 테니스의 규칙을 배웠고 ‘따끈따끈 베이커리’를 보면서 다양한 종류의 빵을 접하게 됐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읽는 시간 대부분은 전공 서적으로 채워졌다. 어느덧 동네 만화 대여점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일상에서 만화책을 읽는 시간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여느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처럼 읽고 쓰는 일에 몰두했지만, 더는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언젠가부터 글을 읽는 것이 직업적 의무 같은 것이 돼버렸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글도 읽어내야만 했다.

바야흐로 인터넷의 시대. 모든 것은 인터넷 속으로 녹아들었다. 음악이 CD에서 MP3, 그리고 다시 스트리밍 서비스가 된 것처럼 만화도 스크롤을 내리면서 읽는 웹툰이 됐다. 무료할 때면 가끔 강풀이나 조석의 웹툰을 즐겨보긴 했지만 역시 나에게 웹툰은 만화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웹툰에서는 만화책이 주는 나른함과 게으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책상 한구석에 읽다 만 만화책이 널브러진 풍경이 좋다. 분명 처음 읽는 책인데 내가 그어 놓은 밑줄과 메모를 발견하는 이상한 하루가 좋다. 필요한 책을 찾다 우연히 집어 든 책에 꽂혀 시간을 허비하는 무책임한 마음이 좋다.

책장에서 CD가 사라진 것처럼, 비디오테이프와 DVD가 버려진 것처럼, 언젠가는 나의 종이책들도 모두 이북(e-book)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런 날이 온다 해도 어쩐지 나는 내 소중한 어떤 책들은 책장에 고이고이 모셔둘 것만 같다. 그 목록에는 나의 오랜 유학 시절을 함께 했던 ‘멋지다 마사루’ 일곱 권이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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