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앞의 거리와 관련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와 관련하여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여러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화여대 앞의 거리는 우리 사회가 이화여대에 대개 갖는 여러 편견을 확인시켜주고 재생산해내는 곳이며 패션의 거리나 관광특구 지정과 같은 생각은 일반적으로 여대생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우리는 애써서 이대앞 상가가 이화여대와는 사실상 상관이 없으며 나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대형 패션전문 백화점을 겨냥한 미자역사가 들어서건, 원래의 공원부지가 어느 순간에 반으로 줄어들고 그 자리에 20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건 알 바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사실 나도 이화여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희는 그렇게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면서, 이대앞을 바라보며 내가 이대 여자들과는 다른 여자임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을지도 모른다.

이화여대 앞의 문제와 관련한 일반 사람들의 심리는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지 않으며 관광특구 지정이나 상가개발은 그들로서는 상식적인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이대앞의 문제는 이화여대와 관련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가 이대앞의 상업지역화를 걱정하고 아타까워하겠는가? 4­5년 간 이곳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오면서 생각키워지는 것은 이대앞 문제가 생생한 교육자료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면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공간의 문제는 단순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여러 차원을 갖는 문제이다.

이대앞 상가문제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행정 관행이나 먹이사슬의 모습, 지방자치 시대의 확대된 자치장 재량권 사용에 있어서의 임의성과 비민주성, 각종 이권과 연관된 구의회 의원,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주민 참여정치의 의미, 재벌기업의 반사회적 행태, 우리 상업문화의 천박성, 여성문화의 단면 등 학문적 분석을 요구하는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만날 수 있다.

학문은 도서관 안에서만, 외국의 이론서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대앞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환경을 걱정하는 교수모임에서는 그간 몇가지 일을 해왔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민자역사문제와 공원 재개발 문제를 교육환경 보전의 차원에서 제소를 하였고 서명운동을 통한 민원제기, 공청회 주최, 철도청장 면담요청과 서대문구 국회의원 구청장 면담, 자료요청, 이해당사자들 간담회 참석, 대우건설 항의방문 등 우리의 역량과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일을 해왔다.

그 와중에서 많은 교수님들의 격려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윤후정 전 총장님과의 면담에서는 학교의 적극적인 의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대앞과 관련한 하나의 꿈이 있다.

호원당 부근의 1,000평이 공원으로 바뀌고 상가 중간에 커다란 여성 전문서점이 들어서고 이와 더불어 아동 전문서점과 같은 것이 들어서서 이대앞이 이화여대와 더불어 여성문화가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곳은 어줍지 않은 관광특구로 지정하지 않아도 교양과 지성이 있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여서오가어린이를 위한 아주 특이한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15m의 좁은 도로를 끼고 20층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자리잡게 된다면 대형 패션백화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민자역사 건립을 막기도 힘들어질 것이고 이대앞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그에 따라서 고층화하고 대형상가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화여대는 점점 초라한 모습으로‘저건 내탓이 아니예요. 나는 저것하고 달라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변명하게 될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많은 것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많은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에 대한 확인은 아주 사소한 선택에서 이루어진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해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부산대가 교육환경권과 관련한 송사에서 승리한 것이 하나의 모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이루어진 교육환경의 변화는 또 다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원한던 것과 모든 것이 반대로 진행되어 20층 복합상가도 들어서고 민자역사백화점도 들어서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시 나쁜 모델이 되어 대학가의 상업지역화를 부추기게 될 것이다.

‘우리도 이대앞처럼 개발하자’는 개발의지를 자치단체장들은 갖게 될 것이고 엄청난 개발이익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대학과 가까운 기차역들 또한 이대앞‘신촌역’처럼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개발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선택은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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