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웁살라 대학교 학생회관, 해외취재를 경험하며 교환학생을 결심했다. <strong>현정민 선임기자​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 학생회관, 해외취재를 경험하며 교환학생을 결심했다. 현정민 선임기자​

 4.3 만점에 2.1. 숫자의 구성에서 어렴풋이 티가 났겠지만, (누군가의) 학점이다. 학우들의 교환학생 경험을 공유하고, 각자의 배움과 느낌을 자유로이 표현하고자 마련된 본 코너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다소 당황스러운 도입일 것 같다. 졸업 직전 헝가리행을 택했다더니 갑자기 성적 공개? (심지어 당당히 꺼내 보이는 저의가 도저히 읽히지 않는 미천한 점수다.)

2018년도부터 이화에 발을 들여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나의 1학년 첫 학기 성적은 4.3 만점에 2.1이었다. 맞다. 너무 재밌는 학기를 보낸 나머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학점이 따라붙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복구해 그 흔적조차 희미하지만.

학점이 낮다고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많이) 바로 어려움이 닥치진 않았다. 우리 모두 입시라는 관문을 바라보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자. 내신, 혹은 모의고사 점수는 즉각적인 영향을 불러왔다. 높은 등급은 약간의 안도감과 막연한 불안감을, 낮은 등급은 약간의 해방감과 확실한 절망감을 이끌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의 성적은 다르다. 누구도 개입하지도,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도 않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미래의 내가 좀 많이 힘들어지겠구나, 막연한 생각만 잠시 회오리쳤을 뿐.

그러나 위기는 머지않아 드러났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보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교환학생 제도다. 본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4.3 만점에 3.0 이상의 학점과 72점 이상의 토플 점수가 필요하다. 2.1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5월 발행된 본지의 ‘학점 4점대, 토플 100점’이 기본? 과열되는 교환학생 경쟁’을 보아하니 지원을 위한 허들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본인은 어학을 전공하고 있긴 하나, 처음부터 교환학생에 대한 목표가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 가게 된다면 좋겠지만, 가지 않더라도 큰 미련은 가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이대학보 기자 생활 중 경험한 스웨덴 해외취재 프로그램이 불씨가 됐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교내 자치제도를 알아보고자 떠난 길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스웨덴의 학생문화를 2주가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겪으면서 색다른 시야가 열리는 것을 느꼈다. 교환학생을 꼭 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다행히 성적을 어느 정도 복구한지라 지원 요건은 얼추 갖춘 상태였으나, 이때가 되니 발목을 잡는 건 웬걸, 얼마 남지 않은 이화에서 시간과 (상대적으로) 늦어버린 시점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었다.

물론 도전의 시기와 형태에 대해 압박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소속 집단이 공유하는 사회적 규범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8월 22일자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의대를 진학하기 위해 영재고를 진학하고, 영재고에 진학하기 위해 ‘늦어도 중2까지 고교수학을 마스터’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다. 규격화된 목표를 효율적으로 완수하는 것이 ‘성공’으로 종종 간주된다는 것이다. 감히 이 규율을 깰 것을 권유할 순 없다. 선택의 몫도, 책임의 몫도 오롯이 방향키를 쥔 본인에게 있기에. 하지만 이 장황한 글을 빌려 감히 첨언할 수 있다면, 약간은 늦거나 약간은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본인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상투적인 위로와 함께.

주변에서 하나둘씩 직장이라는 새 둥지를 트는 친구들을 보며, 그럼에도 교환학생을 택한 데에는 하고 싶은 걸 기어코 하고 마는, 후회하더라도 해버리는 본인의 고집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물론 이 고집이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여러모로 운 좋게, 알맞게 조성된 덕도 클 것이다.

‘갓생’을 추구하는 시대다. 갓생을 살아내기 이전, 자신의 ‘갓’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또 갓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교환학생을 목표로 하는 학생 중 ‘다들 가니까 가야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기에 여실히 느끼는 지점이다.

교환학생도, 그 어떤 도전에 있어서도 너무 조바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했던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방법은 결국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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