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 1990년대 초 유학 시절에 다른 한국 유학생들에게서 자주 듣던 질문이 있다. “이 대학교와 도시에서는 장애인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이 도시가 장애인이 유난히 많은 곳이냐”는 것이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그 당시 서울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어느 곳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다니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또는 시설에, 특수학교 안에만 주로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교 특수교육과 학부 재학 시절인 1985년경에 장애학생과 함께 어딘가로 이동하려고 택시를 잡으면, 내 앞에 정차했던 택시가 휠체어를 탄 학생을 보고서는 그냥 가버리는 일도 흔했다. 이때는 지금처럼 장애인을 위한 콜택시나 저상버스가 없어서, 택시나 승용차가 아니면 바깥을 다니기 어려웠다. 단독주택이 많았는데 집 앞의 계단 때문에 밖을 나가는 걸 포기하고 집에만 있는 장애인들도 많았던 시절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많은 것들이 변하여 저상버스도,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모두 지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도 과거에 비해 좋아지고 국가의 지원도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이로 인해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법적인 기반이 조성된 것 등이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싶다, 예를 들어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1997년에 제정된 이후 건물이나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보도에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니기 편하도록 턱을 없앤 곳이 늘어났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던 오래된 건물인 본교 사범대학 4층 강의실까지 4명의 학생이 휠체어를 사용하시는 특강 강사님을 휠체어에 앉으신 채로 들고 올라왔던 기억이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에 대해 나와 다른 ‘그들’로 바라보며 선을 긋는 일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뭔가 잘못된 편견도 아직도 만연하다.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가 세워진다고 하면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이유로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뉴스가 나오고, 지금껏 30년 가까이 국가의 교육정책으로 추진해 왔고 전 세계적으로 존중되며 많은 연구 결과가 뒷받침하는 통합교육이 갑자기 도전 행동이 있는 학생은 특수학교로 보내야 한다는 말로 간단히 포기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왜 아직도 이런 일이 반복될까. 장애학생이 범죄인도 아니고 특수학교가 있다고 인근 집값이 하락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통합교육을 잘 실행하기 위한 여건이 불충분한 것이 문제이지 장애아동의 장애가 문제인 것이 아닌데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장애학생에게서만 찾으려 하는 것 같다.

장애인을 불편해하는 마음, 나아가 가능한 한 함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서로 충분히 알아갈 시간도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30여 년 동안 일반학교의 특수학급과 통합학급 안에서 많은 장애학생들이 교육받았고, 그런 경험을 공유한 비장애학생들을 이화여대에서도 만나게 되었을 때, 과거보다 훨씬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장애학생들과 접하면서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 좀 더 장애인과 함께 지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으며, 이는 장애학생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인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 친구의 가족일 수도, 나의 가족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다. 나와 상관없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테두리 안에 장애학생도, 장애인도 함께 포함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변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차별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감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모든 일의 근본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정책들과 법안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그리고 우리 이화인들이 나와 장애인을 구별하여 생각하여 ‘그들’을 다르게, 차별적으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장애인은, 장애학생은 장애가 있지만 우리와 동일한 평범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좀 뜬금없지만 이화의 동아리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쏙쏙이화’는 배구를 좋아하는 이화인과 발달장애인의 모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애인과 함께한다는 것보다, 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이화의 교정 안에서 즐겁게 공통의 관심을 공유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 그리고 지난봄 이화의 홈페이지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만든 이화과자 중간고사 간식 뉴스를 만난 것도 매우 반가웠다. 역시 이화는 새로운 변화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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