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문제에 관해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최장집 교수의 한국전쟁관, 국가관에 대해 조선일보가 최근 제기한 일련의 비판은 국가의 주요 공직을 맡고 있는 중진 정치학자와 한국 최대 언론매체 간의 대결의 차원을 넘어서 바야흐로 한국사회 전반의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국가 주요정책 수립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공직자의 이념적 성향은 분명히 국민적 관심사일 수 있고, 또 언론매체가 이에 대한 검증을 시도한다는 것은 정당성의 차원을 넘어 언론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책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사회 각계의 비판과 시비가 연일 도하의 언론매체들을 장식하는 것은 조선일보의 최교수에 대한 이념적 검증이 객관성과 형평성을 상실한 점에 무엇보다도 기인한다.

사회과학자의 학문세계에 대한 검증과 평가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 전체를 관류하는 핵심주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입장을 가려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최교수의 저작 중 한국전쟁에 관한 몇편의 논문, 그 중에서도 몇 개의 문장과 용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서 이것이 그의 학문세계, 이념적 성향, 나아가서 국가관을 대표한다고 단정지은 다음 이에 대해 대단히 원색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월10일자 조선일보가 게재한 최교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 기사는 거의 모든 기사작성자를 실명화하고있는 조선일보의 최근 보도원칙과 달리 기사작성자를 아예 밝히지 않고 있다.

또 조선일보의 기라성같은 논설진에 포함되어 있는 정치학 박사 및 이에 준하는 정치학 연구수준을 갖춘 어떤 인물도 실명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개진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최교수에 관한 비판기사의 저급성과 편파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기류가 신문사 내에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케 해 준다.

사실 최교수의 저작을 관류하는 핵심 주제는 민주주의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단지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의 권력행사를 정당화시켜 주는 절차로 인식하는 것을 거부하고, 사회적 부와 문화적 성취를 균등하게 배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권리의 실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제도화해 놓은 것으로 파악한다.

자유와 권리의 형식적인 보장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 사회 구성원이 이것을 실제로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체제, 그리하여 정치적, 도덕적 자아실현의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는 체제야 말로 민주주의의 참된 의미가 가치를 구현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는 이 목표를 실현하는데 미흡하다고 최교수는 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타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한국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규범적, 현실적 대안으로 최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소위 민중적 민주주의 (필자는 이 용어 자체에 동조하지는 않는다)는 자유민주주의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한국적 현실에서 그것을 더 발전시키려는 최교수 나름의 시도이다.

“민주주의는 그것 자체가 가치를 지니며 민주주의의 실현이 특정의 역사적 계기에서 휴머니즘이 최대로 실현되는 상태로서의 민주적 공동체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지향점이며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논급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읽을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불식하고 또 이미 폐허상태에서 도달한 한국 사회의 도덕적 하부구조를 재건하기 위한 유일한 방아능로서 한국미주주의의 실질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해 온 최교수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공산혁명의 이념에 동조하는 자로 낙인찍는 것은 엄청난 오류이다.

한국현대정치사에 대한 최교수의 연구는 이와 같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역사적 원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와 관련해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주도할 시민사회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억압해 오고 있는‘국가’의 강고함이다.

민주개방 이후 10년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억압성을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 시민 사회에 대해 거의 완전한 자율성을 국가가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근본원인을 그는 분단의 지속과 한국전쟁에서 찾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속한 모든 국가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헤게모니자원으로 남아있는 한국의 반공 이데올로기야 말로 분단과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산물이면서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해 온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명백히 한국 현대 정치사에 대한 최교수 인식의 핵심적 평가대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최교수의 인식과 평가는 근본적으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즉 한국전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견실한 성장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아 온‘역사적 불행’으로 그는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교수가 한국전쟁을 미족해방을 위해 김일성이 단행한‘역사적 결단’으로 미화하고 찬양했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며백히 언어도단이다.

최교수에 대해 이처럼 불공장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이념논쟁의 불을 지펴보려는 것이 조선일보의 원래 의도였다면 이것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가 연일 인용 보도하는 사회정치단체들은 대체로 최교수의 저작을 직접 읽어보았을 것으로 도저히 판단할 수없는 부류들로서 조선일보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며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확대·강화하고 있다.

반면 조선일보에 의해 최교수의 것으로 단정된 노선과 이념을 실제 취하고 있는 좌파적 지식인들 역시 최교수 본인과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모처럼 제공된 이념논쟁을 즐기면서 이를 지속하려는 태세를 확연히 갖추고 있다.

즉, 조선일보와 최장집 교수와의 대립은 이제 보수우익 대 진보좌익 간의 이념대결의 양상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실질적 향유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지 못한 가운데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사회가 다시 이념적 대립과 갈등의 회오리에 휩싸이려 하는 이같은 현상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최장집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의 이념논쟁의 탈냉전, 세계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반공 이데올로기의 압도적인 규정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비극적 현실을 극명히 드러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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