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학보사 기자가 된다면 학보에 24/7 매진하겠습니다!”

지난 2022년, 이대학보 108기 면접에서 외쳤던 말이다. 차분하게 이어갔어야 할 면접에서 긴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낭패였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수없이 연습했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퇴임을 앞둔 기자가 된 미래의 내가 보면 코웃음을 칠 일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새내기만 할 수 있는 대사이지 않았을까. 패기 하나만으로 기자 일에 정진하겠다고 한 배짱이 왠지 모르게 눈에 띄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눈에 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수많은 위인들이 갖는 장황한 서사 하나쯤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좋은 성적을 받고 이화에 온 것도 그런 삶의 모토에서 기인한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고등학생 때의 기억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남들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탓에 두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했던 기억 말이다. 중학생 때 공부를 관둬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은 처참했다. 성적을 받고 엄마가 한숨을 푹푹 쉬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 정말 이렇게 살 거야?” 그 순간 내 뇌리를 스쳤던의문이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근 일 년간 친구 관계도 그럭저럭 좋았고, 성적도 높은 대학을 가기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괜찮은 성적을 받았다.

그 후로 열일곱 내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현재의 삶도 살만 하지만 뭔가 더 특별한 게 필요했다. 학년이 오른 뒤 떠올린 생각은 상위권 대학 진학이었다. 중졸에게 명문대 진학 말고도 더 특별한 서사가 무엇이 있었을까. 가끔 작곡가로 성공하거나주식이 대박 나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선배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에게는 그들처럼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될 명분도 없었고 재능도 없었다. ‘전교 70등에서 막판 스퍼트로 이대 가기’라는 서사를 쓰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높으신 분 얼굴 앞에 녹음기를 들이밀어 보고도 싶었고, 범죄를 파헤치느라 잠입 취재를 해 보고 싶기도 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본 기자라는 직업은 그랬다. 그래서 학보에 들어왔다. 발로 뛰며 학내곳곳의 문제를 취재하고, 미디어센터라는 큰 기관에 소속돼 명함 내밀고 다니는 학보사 기자가 그렇게 특별해 보였다.

다시 2023년의 나로 돌아와 보자.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기사를 작성한 나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진일보했는가. 작년의 내가 원하던 대로 ‘눈에 띄는’ 사람이 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면접 볼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마주한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이거밖에 못했냐는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간의 화제가 된 기사를 써 본 적도 없고, 일생일대의 기회로 남을 해외 취재를 간 적도 없다. 주변 동료들은 하나 둘 제 가치를 인정받는데 아직도 혼자서 제자리인느낌이 크다. 마지막 마감일도 한 번에 완고가 나는 법이 없다. 부장기자도, 편집국도 아닌 여전한 평기자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평범한 내가 좋다. 기사를 읽어 주는 것은 결국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취재하고 써도 읽히지 않는다면 결국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학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학생의 의견이 그렇게나 많이 필요하다. 특별한 사람의 기사를 쓰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의 평가를 기대한다.

평기자로 1년을 끝마치는 내가 초라해지는 순간도 있다. 학보에 매진하느라 건강, 학업, 친구 중 단 하나도 챙기지 못한 채 퇴임하는 내 앞날이 캄캄하다. 누구는 한 달 동안 죽어라 공부해서 공짜로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누구는 수많은 스펙으로 단숨에 대외 활동에 합격했다. 어쩌면 과거에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내가 정한 기준에는 미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에게 떵떵거리면서 살 인생이 필요하지도 않다. 아주 지극히도 일상적인 내가 특별하다.

이제 나는 나의 평범함을 사랑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각자의 평범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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