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은 드라마 작가
민지은 드라마 작가

드라마 ‘검법남녀’ 시리즈, ‘소방서 옆 경찰서’ 시리즈, 영화 ‘히말라야’ 등의 각본을 썼다. 본교 국어국문학과를 2000년 졸업하고 영화 제작사 등에서 영화와 TV 드라마 홍보 마케팅 일을 하다가 작가로 데뷔했다. 최근 작업한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 드라마가 8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실화

빵을 사기 위한 줄이었다. 하루의 허기와 고단함을 달래기 위한, 절박한 발길들이었다. 쾅! 하지만, 그들의 아무렇지도 않았을, 아니 어쩌면 조금은 공포에 질려있었을지도 모르는 얼굴들 위로, 포탄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빵을 사려던 사람 중 22명이 그날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수십 명이 다쳤다.

이날 비극을 지켜본 사람 중에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라는 이름의 한 첼리스트가 있었다. 그날의 죽음은 사라예보 오케스트라의 수석첼리스트였던 그의 심장에 깊게 새겨진 사건이 된다. 바로 다음 날, 그는 검은 연주복을 입고, 첼로를 들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사망자의 수와 같은, 정확히 22일간 오후 4시에 매일 첼로를 연주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로 죽은 이들을 기리며….

1992년 6월, 내전에 휘말렸던 도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있던 실화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소설은 캐나다의 소설가 스티븐 갤러웨이가 위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

 

상상

소설가는 역사 속 첼리스트와 함께 있었을 법한 가상의 인물들을 실화와 함께 엮었다.

애로. 사격선수 그러나 지금은 저격수. 애로는 첼리스트의 연주가 가지는 평화의 메시지에 위협을 받은 세르비아계 저격수들이 첼리스트를 노리자 파견된 저격수이다. 그녀의 임무는 첼리스트가 22일간 연주를 끝마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일. 고독하게 홀로 몸을 숨긴 채, 그녀는 돌부처처럼 첼리스트를 눈에 담는다. 잠시 동안 그녀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회계사 보조인 케난과, 은퇴를 앞둔 제빵사 드라간은 사라예보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도 절박하게 생존을 이어갔던 인물들의 면면을 그려낸다. 험로를 뚫고 오로지 ‘물’을 얻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케난. 아내와 아들은 외국으로 피신시켰지만, 정작 본인은 떠나지 못하는 드라간. 그리고 첼리스트를 쏘아야만 하는 어떤 저격수까지….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할퀴고 휩쓸어 버린다. 작가는 사선(死線)에 선 극한상황 속 인간의 모습을 절제된 담담함으로 담아내 더 큰 울림을 준다.

 

실화 그리고 상상력

이 책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던 것은 실화와 상상력을 엮어낸 소설가의 선택이었다. 사라예보 내전의 이야기도, 그곳에서 첼로를 연주했던 첼리스트의 이야기도, 그는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 자신이 접한 사실의 조각들을 엮어 독자들을 내전의 한가운데로, 총성과 감정이 솟구치는 격동의 마당으로 이끌어간다.

 

실화, 소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의 만남

영국의 작곡가인 데이비드 와일드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첼로 곡을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에게 헌정한다. 이 곡은 1994년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 첼리스트 요요마에 의해 연주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피아니스트 폴 설리반은 그 순간을 이렇게 말했다.

“요요마가 의자에서 일어나 관객석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 요요마의 손길을 따라 모든 눈길이 모였고, 그 손길이 부르는 사람이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바로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것을 확인한 청중들은 충격을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마일로비치는 요요마가 있던 무대 쪽으로 걸어갔고 무대에서 내려온 요요마는 스마일로비치를 껴안았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모두 일어났고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드라마였다.”

역사 속 실화와 소설가가 만든 허구의 세계와 그들의 선한 영향력을 또 다른 예술로 승화시킨, 세 개의 다른 차원이 만나는 사건이었다.

 

실화와 허구를 엮다

드라마와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가로서 늘 실화와 상상의 경계선 그리고 그들이 주고받는 영향력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 ‘검법남녀’와 ‘소방서 옆 경찰서’를 집필하면서 실제 경찰, 검찰, 소방, 국립과학수사 연구원분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때론 웃으며, 때론 울면서 들었던 그 이야기들의 행간에는 사선을 건너는 직업군에서만 볼 수 있는 삶의 치열함,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순간들, 범죄의 이면에 가려진 진실, 거짓 등이 수없이 교차했다. 그 이야기들을 실화 그대로 쓰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진정성’만은 담아내려 노력했다. 사라예보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캐나다의 한 소설가, 그의 책상은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나도 다시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를 그려낸다. 언젠가는 실화와 상상과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시청자들이 만나는 순간을 꿈꾸며.

민지은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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