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지구에서 한아뿐' 등을 쓴 정세랑 작가가 대학원관 중강당에서 '콘텐츠의 세계로, 유연하게'라는 주제로 17일 강연했다. 호크마대에서 주최한 2023 북콘서트는 2019년 이후 4년 만에 대면으로 열렸다. 참석자 수는 당초 200명으로 정해져 있었으나 학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350명으로 늘렸다. 장소도 ECC B142호에서 더 넓은 중강당으로 바꿨다. 

 

17일 본교 대학원관 중강당에서 정세랑 작가의 북콘서트가 열려 약 350명의 이화인이 참여했다.   박성빈 사진기자
17일 본교 대학원관 중강당에서 정세랑 작가의 북콘서트가 열려 약 350명의 이화인이 참여했다. 박성빈 사진기자

초청 연사인 정 작가는 꾸준히 소설을 써왔다. 2013년에는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행사는 호크마대 정혜중 학장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정 학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오랜만에 개최했는데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정세랑 작가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기발한 창작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강연을 시작하며 "많은 분들이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여러분에게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주제를 설명했다. 고려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정 작가는 첫 직장으로 마케팅 리서치 회사와 출판사 중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출판사에서는 원래 배정됐던 아동문학팀 대신 한국문학팀에 가게 됐다. 편집자로 일하다 보니 어느새 직접 글을 쓰는 작가가 됐다. 그는 "수많은 우연이 인생을 결정했다"며 학생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우연들이 재밌는 파도타기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하다 보니까 더 잘 맞고 재밌더라고요."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실질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취업 시기의 고민은 '삶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이 타협할 수 있는 부분과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 업계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강연을 이어 나갔다. 공모전은 오래된 회사의 오래된 공모전 혹은 큰 회사의 첫 공모전을 추천했다. 주의해야 할 대상으로는 "신인들에게만 접근해 계약 조건 수정을 거부하고 ‘함께 성장하자’고 말하는 사람이나 회사"를 꼽았다. "콘텐츠 업계에는 신인들에게만 접근하는 나쁜 사람이 많아요. 좋아 보이는 것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잘 확인하세요."

마지막은 '좋은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좀 지나치게 콘텐츠를 많이 소비한다, 일상생활이 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콘텐츠 제작자가 될 거예요." 정 작가의 말에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중강당을 메웠다. 그는 "1을 쓰기 위해선 100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를 가리지 않고 많이 접해야 한다는 뜻이다. "콘텐츠가 더 많은 존재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이제 한국 콘텐츠는 한국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기에 여러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 작가는 "안테나를 펼친 상태로 콘텐츠를 만들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작품의 소재나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정 작가는 "시간에 쫓기지 말고 나를 위한 영감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쓸 때 꼭 지켜야 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을 묻는 질문에는 "최대한 미래의 시점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거나 대중적인 소재가 아니더라도 결국엔 그런 콘텐츠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행사 이후에는 사인회가 열렸다. 사인을 받고자 하는 줄이 중강당 밖까지 길게 늘어섰다. 학생들은 정 작가의 책을 품에 안고 기다렸다. 사인을 받은 후 책 사진을 찍고 있던 주영은(커미∙18)씨는 "콘텐츠 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유의 사항이나 꿀팁을 말씀해 주셔서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북콘서트에는 다양한 학번과 전공의 학생들이 자리했다. 이수나(사이버∙22)씨는 "책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실 줄 알았는데 콘텐츠 업계 얘기를 많이 하셔서 신선하게 봤다"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참여한 염다연(경제∙19)씨는 "좋아하는 작가님을 만날 수 있어 기대했는데 강의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걸 느낄 수 있어 의미 있었다"며 "내가 콘텐츠를 많이 접하고 있고 어떤 콘텐츠를 접하는지가 삶을 결정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는 감상을 남겼다. 

정 작가는 강연을 통해 "제가 사회로 나가기 전에 느꼈던 불안을 덜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래가) 계획대로 되지 않기도 하고 이상한 우연들이 올 수도 있지만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자기만의 나침반을 찾고 열린 마음으로 있으면 어떤 지점에 다다르게 돼요. 그런 불안과 유연함에 대해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사진도 찍어 드리고 싶고 (학생들의) 눈을 더 보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서운한 순간들이 있었다면 죄송하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그래도 저한테는 너무 즐거운 저녁이었고 오늘이 아니어도 다른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에는 북콘서트를 총괄한 이경희 교수(호크마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 교수는 "2021년에 섭외 요청을 했을 때에는 작가님이 너무 바쁘셨는데 이번에 다시 요청했더니 흔쾌히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북콘서트를 계기로 "책을 읽고 글쓰기에 도전해 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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