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아름다운 장소에 가면 힘들었던 마음이 치유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지속되어 또다시 그곳을 찾고 싶어질 때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길 기대하게 된다. 아름다운 숲에 가서 생명의 역동성을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숲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숲이 지속되기를 원하고 나아가 숲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참여하게 된다. 석회 동굴에서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석주와 석순을 보고 신비로움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그 동굴의 시간적, 공간적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환경이 제공하는 힘이다.

1961년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선인 보스토크(Vostok) 1호에 탑승했던 구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우주에서 본 지구를 “하늘은 검고 지구의 둘레에 아름다운 푸른색 섬광이 비친다.”라고 표현했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다른 어떤 행성보다 아름답다. 하얀 구름, 푸른 바다, 초록의 식생, 황토빛의 육지 등이 섞여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대리석 못지않게 아름답게 보이는 지구, 그래서 생긴 지구의 별명이 “블루마블(Blue Marble)”, 즉 푸른 대리석이다. 1980년대 초반 국내에서 출시된 보드게임 블루마블도 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아름다운 지구를 돌아다니며 부동산을 구입하는 게임 방식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아름다운 지구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학교 과학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1990년대 초중반 지구를 중심으로 과학 교육을 구성하자는 통합 교육과정인 지구계교육(earth system education)이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인지적 측면이 강조되던 과학 교육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지구계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학생들이 지구소양(earth literacy)을 갖추는 것인데 지구소양에서 각별하게 강조하는 것은 지구에 대한 심미적(審美的) 관점이다. 이 외에도 행성 지구에 대한 청지기 의식(stewardship)을 추가한 것도 지구계교육이 이전 과학 교육 과정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예술이나 문학 영역에서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해 온 것은 동서고금 공통이고 새로울 것이 없다. 국어 시간에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감상했다. 미술 시간에 배운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작품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달무리와 별 무리가 뿌옇게 표현된 깊고 푸른 밤이 보인다. 음악 시간에 감상한 비발디의 “사계(Four seasons)”에는 겨우내 얼었다 녹은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 천둥치는 소리, 비 오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있다. 반면,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개념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 과학 시간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할 여유는 없었다.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지구 환경의 변화가 비가역적임을 알고 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청지기 의식 함양 역시 이전 과학 교육에서 강조하던 부분이 아니다. 지구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지구의 아름다움만 느끼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지구 지킴이를 실천해야 한다. 비행기의 남녀 승무원(steward, stewardess)들이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하나에서 열까지 다 관리하듯이, 중세 시대 유럽의 집사(steward)들이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집안 대소사를 일일이 다 챙겼듯이, 우리는 모두 청지기의식을 가지고 세심한 지구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

지구 환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지구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끼거나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지구 환경 지킴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윤리 시험을 잘 본다고 해서 다 윤리적인 사람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지구 환경에 대한 지식과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정비례하는 것도, 반비례하는 것도 아닌 그저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과학 교육에서 지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많이 알면 지구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이를 지키고자 실천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거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연구 결과인 셈이다. 최근에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우선 경험하면 소중히 여기게 되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기능을 익히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게 된다는 주장이 부상하고 있다.

지구윤리학(Geoethics) 개념이 떠오르면서 과학 교육의 패러다임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구 환경 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 즉 인류세(Anthropocene) 시대를 살면서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윤리학 개념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지구윤리학은 지구과학을 자연과학으로서의 영역을 넘어 문화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철학적 접근으로까지 확장한다. 즉, 문화를 통해 지구를 느끼고, 심미적으로 지구를 감상하며, 사회학적으로 지구 환경 문제에 접근하고, 우주 속에서 지구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민까지 다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 지구를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미래 시민 양성에 과학 교육이 앞장서서 동행하고 있다. 지구 환경을 위한 교육은 인류 생존을 위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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