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3주간의 휴간을 마치고 돌아온 이대학보입니다. 이번 학기 하반기 발행이 시작됐습니다. 편집국 칼럼으로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도 한 번이 남았네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대학보 1660호의 메인 콘텐츠는 해외취재 기획입니다. 기획의 주제는 청년 주거였습니다. 운 좋게 5학기째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저지만 졸업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독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왕이면 학교 근처에서 괜찮은 집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것저것 알아볼수록 망설여졌습니다. 전세는 목돈을 구하기 어려운 데다 사기 우려가 먼저 들었고, 월세로 하자니 매달 60, 70만 원이 넘어가는 지출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사회초년생에게 ‘괜찮은 집’이란 사치였던 걸까요. 인터랙티브 기획에서 해외취재 기획까지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이것이었습니다. 서울살이 청년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인터랙티브 기사에서 비싼 월세로 고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했다면, 해외취재 기사에는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덴마크에는 타인과 함께 사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대학생과 난민, 청년과 노인도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편하지만 고독해지기 쉬운 우리나라 청년들의 자취방과는 달랐습니다.

기사에서는 함께 사는 것의 장점을 열심히 피력했지만, 저는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느슨한 공동체의 따스한 결속이 얼마나 좋은지 눈과 귀로 확인하면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혼자라서 힘들고 외롭지만 편하다고 생각하던 제게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너무 어려워 보였습니다. 나도 남도 못 믿는 깊은 불신이 어디에서 왔나 했는데, 한국 사회로부터 경쟁에서 승리하여 생존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들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곳에서 같이 살 수 있는 안전한 타인을 찾기란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생면부지 타인과 함께하는 생활이 잘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은, 혼자 살기가 두려운 만큼 남을 신뢰하기도 어려운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방이 어둡기만 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가고는 있으나 발 딛는 곳에 길이 있는지 몰라 불안합니다. 내 옆도 어두워 보이지 않고, 옆에서 걷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도 없습니다. 타인을 알지 못하고, 알아갈 여유도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타인이 없으면 나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우리집 기숙사에 처음 입사하던 날, 입사 서류를 작성하다 비상연락망 항목에서 멈췄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와줄 수 있는 사람의 연락처 3개를 채워야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500개가 넘는 연락처 중 저의 안전망이 되어 줄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조금 슬퍼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해외취재를 통해 다른 삶의 방식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듯합니다.학생과 난민 기숙사 델레후세네에 사는 한 학생은 “여기 사는 모두를 알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알면 무섭지 않습니다. 여기서 앎이란 연대감입니다. 연결돼 있음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정현종 시인의 ‘사람들 사이의 섬’을 떠올립니다. 우리들 사이의 섬은 어떤지, 황폐화되어 있진 않은지 생각합니다. 캄캄한 가운데 얼굴을 모르는 당신에게 응원을 건네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 더 안심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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