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청바지 광고. 모델들의 성별, 나이, 체형이 다양하다. <strong>김해인 선임기자
오슬로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청바지 광고. 모델들의 성별, 나이, 체형이 다양하다. 김해인 선임기자

 2019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노르웨이 드라마 ‘스캄(SKAM)’(2015)에 과몰입하고 있었다. 시험 기간 때 드라마가 더 재밌어진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로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지만 어쩌다 노르웨이 드라마였냐고 한다면 우연히 인터넷에서 외국 드라마 추천 게시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4년 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을지는 꿈에도 모른 채 정주행을 시작했다.

드라마 제목인 SKAM은 영어로 Shame, 한국어로 번역하면 수치심, 창피를 뜻한다. 총 4개의 시즌으로 이뤄져 있고 시즌별 주인공이 숨기고 싶어 하는 고민을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드라마를 보며 눈에 띄었던 점은 배우들의 체형이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여자 고등학생 5명인데, 마른 체형의 배우는 한 명뿐이고 나머지 배우들은 모두 마른 기준에서는 벗어나는 체형이었다.

노르웨이의 공영방송사 NRK에서 제작한 이 드라마는 제작자들이 6개월간 진행한 청소년 대상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16살 여자아이들을 시청자 타깃으로 삼아 친구 관계, 공부, 운동 등 모든 방면에서 완벽해지려는 이들의 강박을 덜어주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10대 여자아이들에게 몸이란 머릿속을 차지하는 큰 고민거리이기에 일부러 다양한 체형의 배우들을 캐스팅하지 않았나 싶다.

한 달 전쯤 오슬로 시내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청바지 광고를 마주쳤다. 청바지를 입고 있는 모델들의 개인 사진이 6장 붙어있는 형식이었는데, 모두 성별, 나이, 체형이 달랐다. 급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는데도 멈춰서서 광고를 멍하니 들여다봤다. 청바지 광고에서는 항상 마른 모델들만 보다 보니 사진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마른 몸이 모든 광고의 기준이 된다. 드라마나 연애 리얼리티와 같은 예능 등 모든 미디어에서 그렇다. 특히 케이팝 산업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에게 허용되는 체형의 기준은 더 가혹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기준은 모델과 아이돌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라고 말하겠지만 체형의 획일화가 미디어 안에서만 머물지는 않는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 SNS에서 ‘키빼몸’, ‘개말라’, ‘뼈말라’ 등의 단어들이 유행한다고 한다. 여자 아이돌의 마른 몸매를 동경하며 키빼몸(키에서 몸무게를 뺀 숫자) 수치가 얼마 이상이어야 ‘개말라’, 뼈가 보이도록 마른 ‘뼈말라’가 된다며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거식증 환자가 30% 이상 증가했으며 2021년 수치상 10대가 2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몸을 사랑해라”, “연예인은 연예인일 뿐이다”와 같은 텅빈말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당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말해도 주변에 보이는 몸이 단 한 가지 체형이라면 그러기 쉽지 않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하던가, 이 고사성어가 여기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노르웨이에 와서는 더 다양한 체형을 미디어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보게 됐다. 다양한 체형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나의 몸이 긍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노르웨이인 친구에게 물으니 미디어에서 보이는 체형 다양성은 10년 사이에 많이 변화한 것이라고 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사람들이 90년대 슈퍼모델들의 사진을 보며 자랐지만 최근 들어 미디어에서 모든 체형을 포함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했다. 2021년부터 노르웨이에서는 포토샵한 사진을 편집되었다는 문구 없이 광고나 SNS에 게시하는 것이 불법이다.

체형은 단순히 몸무게의 문제만도 아니다. 누군가는 허리가 더 길거나 다리가 더 길 수도 있고, 골반이 작거나 클 수도 있다. 근육이 많을 수도 있고 근육이 잘 붙지 않는 체형일 수도 있다. 미는 한 가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은 사람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모든 몸을 미디어에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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