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환승 컴퓨터공학과 교수
용환승 컴퓨터공학과 교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본교에 재직하며 데이터베이스, 정보시스템, 빅데이터 관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컴퓨터식 사고와 문제해결기법’(2021)과 ‘인공지능 파운데이션’(2023)을 출간했고 역서로 ‘인공지능 베이직’(2020), ‘데이터마이닝’(2020), ‘딥러닝 AI 프로젝트 실사례’(2020) 등이 있다. 

경북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에 가니 오늘날 도서관의 역할을 하는 서고의 이름이 광명실(光明室)이었다. 광명은 ‘만권서적 혜아광명(萬卷書籍 惠我光明)’, 즉 ‘수많은 책은 나에게 빛을 밝혀주는 은혜와 같다’는 뜻으로 주자의 글에서 따왔다고 한다.

인간의 생존에는 의식주 외에도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동물을 분류할 때 육식동물과 채식동물 외에도 정보식 동물(infovore)이 추가됐을 정도다. 과거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보던 시민들이 오늘날에는 모두가 한결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에는 이 세상의 모든 정보와 컨텐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은 인터넷 접속도 기본권으로 인정해 감옥에서도 사용을 허용한다. 인터넷 차단이 가장 심한 형벌의 하나일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서비스가 필수로 되어가는 미래엔 AI 서비스 차단이 그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

AI에게 대학생을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은 고전을 읽는다. 이것은 여객기 일등석에 탑승하는 승객들을 관찰해 얻은 결과다. 그들은 세간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플라톤과 일리어드와 같은 고전을 읽는다.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고전으로 사서삼경과 삼국지가 있다면 오늘날 꼭 읽어야 하는 고전과 같은 책도 있다. 재레드 다이어몬드의 ‘총 균 쇠’는 인류 문명사를 담고 있으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의 진화사를 설명한다.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는 생물과 인류 진화의 역사를 밝힌다. 또 서양인이 어떻게 현대 서구 문명의 번영을 이루게 되었는가는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 네 권의 책을 보면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게 된다.

과거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매체가 유일했다. 현대인들은 노래를 듣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대사를 이해하고,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또 SNS와 메신저의 글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모든 종류의 정보를 디지털 컨텐츠로 만들어 빠르게 SNS로 공유하고 있으므로 현대인들은 실제 수백 수레 분량의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이 쉽게 컨텐츠를 만들어 실시간으로 방송하기도 한다. 개인 방송국과 출판사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니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는 개인의 차원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잘 드러나지 않던 한국의 문명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코로나19는 이를 가속했다. 한국을 그저 아시아의 변방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세계인이 한글과 김치, 구들 난방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양의 컨텐츠가 매일 대량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이다. 즉 어떤 컨텐츠를 선택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다. 우리는 친구와 지인 또는 맞춤형 추천 서비스 등을 통해 정보의 큐레이션을 받고 있다. 오늘날 컨텐츠 큐레이션으로 AI는 다양한 개인 맞춤형 큐레이션을 제공하므로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인의 기록과 경험을 따라 하면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오늘날 국가 간 전쟁과 같은 불행한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대로 인간의 어리석음은 우주만큼이나 끝이 없어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희망적인 것은 챗GPT와 같은 AI의 출현이다. 인류가 남긴 모든 기록을 학습한 AI는 이제 어떤 이유에서든 기록이 삭제됐거나 우리가 바빠서 미처 살펴보지 못한 문제를 쉽게 해결해줄 수 있게 됐다. 언제 어디서나 AI에게 모든 것을 물어보면 된다.

챗GPT AI의 능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다. 바로 ‘혜두(慧竇·슬기구멍)’다. 다산 정약용이 표현한 ‘문심혜두(文心慧竇)’라는 사자성어에 등장하는 말인데, 문심혜두란 열심히 익히고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마음을 움직여서 지혜의 문(구멍)이 뚫리게 된다는 뜻이다. 책을 보면서 우리는 글의 핵심을 이해해야 하고 이를 통해 지혜를 길러야 한다는 뜻과도 통한다.

책을 많이 읽고 배워서 지식을 쌓을 수는 있지만, 지식이 많다고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AI와 지식경쟁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지혜의 경쟁은 아직 가능하다. 인간이 AI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지혜로움’을 발휘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을 검색하다가 ‘성공한 사람들의 100가지 지혜’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이번 봄이 가기 전까지 읽어봐야겠다.

용환승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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