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2시40분, 얼룩말 ‘세로’가 서울어린이대공원을 탈출했다. 올해로 4살이 된 세로는 인간의 수명으로 환산하면 고작 10대 중반의 사춘기 얼룩말이다. 비록 탈출한 지 3시간만에 다시 동물원으로 끌려가야 했지만, 세로는 무얼 찾아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까.

2005년 코끼리, 2010년 말레이곰, 2018년 퓨마 탈출에 이은 발생한 동물원 탈출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어떠한 재산상의 피해나 인명피해 없이 세로가 마취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으로 종결됐다. 서울시설공단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탈출 2개월 전 올린 소개 영상에 따르면, 좁은 우리에서 태어나 유일한 핏줄이던 부모마저 잃은 세로는 옆집 캥거루와 싸움까지 벌일 정도로 극한의 스트레스에 도달한 상태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데미안의 구절이다. 나는 부모를 잃은 세로가 어떤 마음으로 동물원을 나와 복잡한 서울을 방황한 지 모른다. 그저, 세로가 세계를 있는 힘껏 부시고 죽을 각오로 펜스 밖 세상을 향해 내달렸음만을 안다.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헤프닝이겠지만, 세로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낭만은 비싸다. 특히,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겐 더욱 비싼 값을 부른다. 예측컨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로를 둘러싼 울타리는 더욱 견고해질테다. 두꺼워진 펜스의 두께, 많아진 감시의 눈길. 모두 보호라는 미명 하에 이뤄지는 명백한 감금행위다. 세로에게 주어진 자유가 고작 3시간 동안 들이마신 시멘트 섞인 서울의 매캐한 미세먼지뿐이라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

예부터 드넓은 사바나를 뛰놀던 얼룩말의 피에는 분명 초원 저 멀리 세상을 내다보는 유전자가 박혀있다. 세로는 무엇을 봤을까. 오후 2시마다 작렬하는 태양을 찾으러 갔대도 세로를 응원하고 싶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낭만을 갈망하는 것처럼, 세로뿐 아니라 알을 깨는 모든 이들에게는 본능에 새겨진 낭만이 있으리라. 그딴 동물원 얼마든지 파괴해버리라고.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