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시내버스 안 유모차. 보통 부모는 유모차를 안전띠로 고정하고 탑승한다. <strong>김해인 선임기자
오슬로 시내버스 안 유모차. 보통 부모는 유모차를 안전띠로 고정하고 탑승한다. 김해인 선임기자

나는 보통 캠퍼스를 갈 때 버스를 탄다.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그때 버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물건이 있다. 네 바퀴에, 위에는 덮개가 달려있고, 안에는 아기가 타고 있는, 바로 유아차다. 신기하게도 거의 버스에 탈 때마다 본다고 말할 만큼 유아차를 자주 본다.

오슬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에 타면 버스 중간에 좌석 없이 비어있는 공간을 볼 수 있다. 유아차 내지는 자전거 등을 둘 수 있는 공간이다. 유아차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게 잡아주는 안전띠가 있어 부모는 그곳에 유아차를 묶어두고 아이와 버스에 탄다. 한국에서는 보통 버스 앞에 있는 문을 이용해 승차하지만 이곳에선 버스 중간에 있는 문으로 차에 오른다. 중간문은 두 개의 문이 양쪽으로 열리는 구조이기에 유아차같이 부피있는 물건들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계속해서 보다보니 점차 익숙해졌지만 처음 오슬로에 왔을 때는 유아차가 조금 생소했다. 특히 아빠들이 밀고 있는 모습은 정말 새로웠고 부럽기도 했다. 아마 낯설었던 이유는 한국 일상에서 유아차를 그다지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최근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서울 출산율은 0.59명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순위에서 10년 넘게 꼴등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합계출산율이 1명에조차 미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인구 유지를 위해서는 적어도 2.1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반에조차 미치지 못하니 꽤 심각해 보인다.

노르웨이의 출산율은 2020년 기준 1.48명이다. 이는 근 몇 년간 조금 떨어진 수치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로 계속 1.5~2명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노르웨이는 성평등하고 가족친화적인 정책으로 유명하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히 여기기에 노동법상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육아휴직기간을 49주까지 사용할 수 있고 유급휴직이기에 이 기간동안 맘편하게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여성의 독박육아를 막기 위해 육아휴직을 쓸 때 남편이 10주 이상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당 유급휴직기간이 없어지는 ‘아버지 할당제(father’s quota)’도 존재한다. 개인적인 관찰로 유아차를 마주칠 때 엄마가 밀고 있는지 아빠가 밀고 있는지 세어보면 그 비율이 반반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현재 한국에선 여성이 출산을 생각하면 커리어는 내려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껏 공부해오고 일해왔던 경력이 끊기고, 이후 다시 일을 시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쉽게 아이를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통념까지 얹어지니 출산, 육아라는 선택지는 점점 더 옅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유모차라는 단어에서 역시 엿볼 수 있다. 단어 유모차는 2020년 성평등 의식 제고를 위해 유아차로 개정됐다.

성평등과 출산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현실적으로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함께 살 집조차 마련할 수 없는 팍팍한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는 보조금으로는 육아를 감당할 수 없다. 여성이 출산을 해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고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육아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비로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 모두 돌봄에 참여해 서로가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유아차를 끄는 남성들이 한국에서도 자주 보인다면 좋겠다.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오슬로 시내 영스토르겟(Youngstorget) 광장에 찾아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인구밀도 낮은 이 도시에서 사람으로 꽉 찬 광경을 보기는 쉽지가 않은데, 다들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진을 위해서 모여있었다. 노르웨이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발전지수(GDI)에서 191개국 중 2위를 차지한 나라다. 국회의석의 45%가 여성의원이고 현재 19명의 장관 가운데 9명이 여성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와서 걸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외쳤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 <strong>김해인 선임기자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 김해인 선임기자

노르웨이라고 해서 완벽하지는 않다. 일상 속의 성차별도 남아있고 노동시장에서 성별에 따라 직종이 갈리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서 모두가 여성의 날 행진을 존중하는 듯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 걸음이 느린 할머니, 단정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온 청소년들, 정말 나이성별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줄줄이 거리를 걸었다. 아이를 낳는 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출산율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누구의 탓이라며 책임을 미루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앞으로 걸어가야 우리는 전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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