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파과(2018)

출처=YES24
출처=YES24

현재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과거는 지금 내 모습에 녹아 있고, 먼 미래는 관념 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재는? 쉼 없는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곳이 뒤틀려 있을지 불확실한 징검다리를 끝없이 밟아내는 것과 같다. 이처럼 현재는 불안하고 무한한 공간이다. 그리고 미래는 외면하기 쉽고 현재는 불확실하다는 시간의 속성 때문인지 사람들은 가끔 과거의 아름다웠던 자신에 매몰되어 지금 자신이 지탱해야 할 것들을 쉽게 태워버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숨 한 번에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현재의 시간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노년에 들어서게 된 여성 킬러 ‘조각’이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능숙하게 방역(소설 내에서는 암살 작업 정도로 통한다) 일을 해냈던 자신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계속해서 추억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 둔해진 감각과 체력을 몸소 느끼고 과거의 자신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은근한 피해의식까지 가지게 된다.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는’ 자기 모습에 좌절하고, 흔들리기 직전이던 조각이 그럼에도 다시 한번 현재를 살아내겠노라고 몸을 일으켰던 이유는 자신이 갑작스레 가지게 된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잔혹하고 극악무도한 살인마에게 감정은 약점이 되고, 사랑은 죄가 된다. 누군가에게 언제 자기 목이 그일지,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의 호흡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방역 환경 때문에, 젊은 시절의 조각에게 처음 방역 일을 가르쳤던 ‘류’는 소중한 것, 그러니까 지켜야 하는 것은 만들지 말 것을 당부한다. 당연하게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각은 일찍부터 먼 미래가 존재하지 않아서, 현실의 자신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면 과거로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류의 당부에도, 조각은 사랑 그 언저리의 감정을 어떤 낯선 의사와 그의 가족들에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맥의 요동침에 방역 일을 위해 평생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온 조각은 순식간에 중독되어 수많은 혼란과 찰나의 안정을 낳았다. 조각은 사람의 숨통쯤은 가벼이 끊어버릴 수 있는 사람임에도, 그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했고, 행복하길 바랐다. 조각을 계속해서 자극하던 ‘투우’가 이 가족들을 인질 삼기 전까지는 외면하고 덮어낼 수 있는 감각이었다.

순간의 파동을 짙은 감정으로 자각하고부터 조각은 몸이 부서지는 고통이 온 관절에 퍼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현재의 자신을 직면한다. 그리고 끝끝내 살아낸다. 지켜낸다.

“지금 마음속에 피어오른 희미한 태동 같은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접속했기 때문에 생겨난 작은 흥분에 불과하며, 거기 몸을 깊이 담그지 못하고 발만 살짝 적셨다가 돌아 나오는 데서 비롯한 아쉬움의 반영이다.”

우리는 가끔 해방을 원한다. 여분의 시간 같은 개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채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더더욱 실낱같은 감정일지라도 소소하게 살아갈 힘을 얻어낼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하다. 조각에게는 그것이 처음엔 ‘과거 자기 모습’이었고, 그 과거에 대한 미련이 자신을 갉아먹은 후엔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이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냉철하던 조각에게 감정이 피어난 순간을 투우가 파고들어 조각은 자신이 그동안 지탱해왔던 일상을 또 한 번 망가뜨릴 뻔한다. 도피라는 단어의 뜻에 걸맞게 이 잠깐의 해방감에 중독되면, 자신이 책임감 있게 지켜야 했을 것들이 어느 순간 어긋나 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에 매몰되거나 어디론가 회피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로 직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맞서야 한다.

우리가 놓아야 할 것은 구원에 대한 순간의 착각이다. 그 얄팍한 동아줄이 빛나고 있는 자신의 현재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지금’은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니, 지켜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뼈가 으스러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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