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자의 명문대 입학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최근 고위직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정모씨가 학교폭력으로 강제전학(8호) 처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서울대에 입학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정모씨는 정시전형으로 서울대에 지원해 합격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정책 토론회’에서 중앙대 대학원장 김이경 교수는 “‘가해자는 명문대행, 피해자는 정신과로’와 같은 언론 보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국민들은 대학입시에 관해서는 그 어떤 불공정성에 대해서도 초지일관 무관용 원칙으로 반응해 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는 관련 전문가들과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대학입시(대입)제도에서 학교폭력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수정 및 보완할 예정이다. 국내 대학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학생들과 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봤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변화하는 학교폭력 양상과 대응책에 관해 논의했다. <strong>정수정 기자
21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변화하는 학교폭력 양상과 대응책에 관해 논의했다. 정수정 기자

 

재학생들의 생각은

강민서(화학·21)씨는 “우리가 모르는 새 학교폭력 가해자가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대학이 학문뿐만 아니라 사회생활과 인성교육도 이루어지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학교폭력 전력을 가진 학생이 입학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감점이 아니라 아예 입학의 기회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장예원(디자인·23)씨는 “학교폭력 전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현행 제도보다 더 큰 감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씨는 지인을 통해 고등학교 재학 중 성폭행을 저질렀음에도 명문대에 입학한 남학생을 알게 됐다.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대입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가해 학생은 아무 문제 없이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장씨는 이러한 현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게 대학 입학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전력 외 다른 영역이 우수할 경우 입학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홍지우(휴기바·19)씨는 “사회봉사나 사법적 처분을 통해 잘못된 행위에 대해 처벌하고, 대입에서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감점에 대해서는 홍씨 또한 찬성했다. 그는 “평가 시 불이익을 받았음에도 입학이 가능한 성적이라면, 대학에 진학해 교육받고 고민하며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홍씨는 “미성년자들은 자아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판단도 어려울 수 있다”며 “대학에 진학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정으로 변화한다면 사회에도 더 크게 공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폭력 징계 사실을 확인하고 감점할 경우 기준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강씨는 “학교폭력의 처분 정도에 따라 차등적인 감점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홍씨 또한 “학교폭력 전력에 대해 몇 점 감점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학은 가해학생을 어떻게 평가하나

국내 대학들은 입시에서 저마다의 기준으로 학교폭력 징계 학생을 감점하고 있다. 수시전형의 경우 학생부종합전형을 운영하는 129개 대학 중 18개 대학 외에는 학교폭력을 감점 요인으로 반영하고 있다. 본교도 수시전형에서 학교폭력 관련 징계자를 감점한다.

본교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정성 평가로 진행돼 서류 평가 시 학교폭력 징계 기록은 감점 요소다. 학생부 교과 전형의 경우 면접에서 생활기록부를 참고하기 때문에 감점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논술전형과 실기전형의 경우 전형 특성상 학교생활기록부 정성평가가 진행되지 않아 별도의 감점은 없다. 입학처는 “학교가 지원자의 학교폭력 징계 사항을 인지한 경우 해당 지원자가 합격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며 “2023학년도 지원자 중 학교폭력 관련 특이사항이 발견돼 감점한 사례는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학교폭력 징계 기록이 있는 지원자가 수시전형으로 지원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학생부를 정성 평가하는 전형의 경우 징계 사항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학생들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정시전형을 운영하는 135개 대학 가운데 정시전형에서도 학교폭력을 감점 요인으로 반영하는 대학은 서울대, 진주교대, 홍익대, 감리교신학대 4곳이 전부다. 본교 또한 정시전형에서는 수능 성적만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별도의 감점이 없다.

 

감점은 사회가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본교 학교폭력예방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당사자인 초중고 학생들은 학교폭력 정책의 효용성에 대해 교사나 학부모보다 낮게 평가했고, 신뢰도도 낮게 나타났다. 그러나 학생부 기재만큼은 중요하고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학교폭력예방연구소 부소장 신태섭 교수는 “학생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것을 효과성이 높은 가해학생 조치로 체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은 결국 대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학 입시에서 학교폭력 징계자를 감점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로, 우리 대학이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신 교수는 “대입에서 학교폭력을 감점 요인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된다”고 말했다.

한편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 처음 마련된 것은 2012년이다. 교육부는 해당 대책이 마련된 것이 10년 전으로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3월 말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다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9일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태에 대해 질의하기 위해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폭력 징계 기록의 보존기간을 연장하고 징계 전력은 대입 전형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학교폭력과 관련한 입시제도를 수정하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시전형에서도 학교폭력에 대한 감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이 장관은 “해당 의견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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