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미국 뉴욕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의 참정권 쟁취를 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였다. 당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가 가득하고 쉴 곳도 없는 환경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지만, 임금은 남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선거권도 갖지 못했다. 1910년 뉴욕의 의류공장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 수백 명이 화재 사고로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고, 당시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 헬렌 토드는 여성과 아동들이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알리면서 “모두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도 달라(Bread for all, and roses too)”라는 슬로건을 외쳤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육체적 생존을 위한 경제적 권리뿐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참정권도 보장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당시 여성들은 참정권이 없었기 때문에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빵과 장미’는 여성운동의 상징이 됐다.

1910년 8월 덴마크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독일의 여성 운동가인 클라라 체트킨의 제안으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로 결의하게 됐고, 1911년 3월8일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 각국에서 세계 여성의 날 집회가 열렸으며, 1975년 UN은 3월8일을 공식적으로 '세계 여성의 날'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의 여성 운동가들은 이미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여성의 날을 기념했고, 해방 이후에는 1985년에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 여성 대회가 처음으로 열리게 됐다. 2018년에는 양성평등기본법을 개정해 3월8일을 여성의 날로 기념하는 것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한편, 양성평등기본법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 선언문이 발표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9월1일을 여권통문(女權通文)의 날로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여권통문의 날’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권리 선언으로 한국 여성 운동의 시작점이 된 여권통문이 선언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여권통문’이란 1898년 9월1일 서울 북촌에서 이소사, 김소사(‘소사(召史)’는 기혼여성을 일컫는 말)의 이름으로 선언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 선언문으로, 여성의 교육권,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문명 개화정치를 수행함에 여성들도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여성들도 남성과 평등하게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고, 여성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다. 이는 단지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국내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와 한국 여성에 의한 최초의 여학교인 순성 여학교 설립 등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세계 각국 여성들은 여성 연대를 통해 오늘날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있는 생존권, 일할 권리, 참정권을 확보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처음 빵과 장미를 외친 때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현재,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22년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취학률은 남성 70.0%, 여성 73.8%로 여성이 3.8% 높다. 반면, 2022년 15세 이상 여성 고용률은 51.2%로 남성(70.0%)보다 크게 낮고,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47.4%로 남성(31.0%)보다 훨씬 높다.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혹은 더 많이 교육받고, 20대 후반까지는 여성들도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만, 결혼, 출산, 육아가 집중되는 30대에 극심한 경력 단절을 겪게 되고, 40대 이후에 저임금·비정규직의 취약한 일자리로 복귀하는 현상을 보인다. 또한,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즉, 남녀 간 임금 격차는 1996년 OECD 가입 이래 2021년까지 연속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OECD 37개국 중 34위, 여성 관리직 비율은 OECD 36개국 중 35위이다. 한국 여성들의 상황이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나 세계적인 위상을 고려할 때 한국 여성들이 받는 빵과 장미는 턱없이 초라한 수준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여성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드러내며 함께 논의해야 한다. 나의 문제는 내가, 여성의 문제는 여성이 스스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함께 발전하며 특히 후속세대 여성들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며 그들의 지지도 확보해야 한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궁극적 이유는 누구나 차별과 편견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일상에서 만나는 남성들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여성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해 가야 한다. 아울러 소외 계층과 소수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연대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를 통해 세상의 절반이 다른 절반과 함께 모두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여성 연대의 역사는 계속돼야 한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