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아침에 이화광장에 들어서려는데 눈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이화광장에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이었다.

이런! 무슨 일이지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건물을 들어서면서 헬렌관 수위 아저씨를 통해 그 진상을 알 수 있었다.

오후에 영부인과 이번 내각에 들어간 졸업생들이 학교에 온다는 것이다.

"이휘호 동창과 입각한 동창 환영식(?)"이라는 이름의 한 시간짜리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는 그 전날부터 비상에 걸려 있었고 수위 아저씨들은 온통 신경을 모아 영부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화인들은 시험기간이라 한시가 급한데도 경호원의 경비하에 이리저리 빙 돌아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종과에 시험보러 가기 위해 도서관에서 본관을 돌아 다시 기숙사를 돌아 먼 길을 돌아가는 이화인들은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를 알려주는 표지판 하나 없는데다 경호원이나 경비원은 학생들의 질문에 귀찮다는 표정만 지을뿐이었다.

나 또한 헬렌관에서 진관에 있는 교수님을 만나러 가야했지만 본관으로 먼길을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수위아저씨의 말에 잔뜩 화가 났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안된다니까 돌아가란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도 막을 수 있는 그 막강한 권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영부인과 이화를 졸업한 입각 동문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국민정부(?)의 시대에도 이런 말도 안되는 꼴을 볼 수밖에 없다니. 물론 영부인이 우리 학교에 온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차로 꽉찬 이화교정에 차가 줄어들고 삼엄한 경비가 서고 시험보러 가는 이화인들은 마치 죄인처럼 고개숙여 이화교정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과연 이화의 주인은 누구이며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쓴 웃음이 났다.

요즘 학교에선 학생자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학생관 문제를 넘어서서 이화에서 이화인이 주인된 권리를 보장받고 학생 스스로가 학교 운영의 하나로 주체로 바로 서는 것이 학생자치일 것이다.

얼마전 학교가 보였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그저 기분 나쁘다고 흘려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화의 주인으로서 다시 한 번 신중히 새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화의 주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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