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시청각교육과·87년졸) 국회도서관 사서
김영주(시청각교육과·87년졸) 국회도서관 사서

본교 시청각교육과(교육공학과)를 1987년 졸업했다. 국회도서관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서양서 구입, 홍보CS, 의회정보서비스총괄, 전자정보정책 등의 업무를 했고 현재 기록정책과장으로 있다. 미국 USC 동아시아도서관에서도 1년 반 정도 일했다. 이때 도서관과 영화 이야기를 엮어 국회도서관보에 ‘영화 속 도서관 이야기’를 몇 편 게재한 이후로 동명의 시리즈를 쓰고 싶다는 야망을 수년째 품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의 책읽기는 외로움에서 시작된 것 같다. 만 10세, 초등학교 4학년. 언니 오빠들과 도시 유학을 떠나 군민에서 도청소재지 시민이 되었고, 같이 놀 친구도 엄마도 없이 ‘고독한 유학생’은 많은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전에는 학교 근처 논두렁이나 친구 집에 몰려다니며 놀기만 할 뿐, 읽은 책이라곤 교과서 외에 ‘자유교양’이라는 이름의 ‘백사 이항복’, ‘강감찬 장수’ 같은 지루한 위인전이 전부였다.

나는 옛날 사람, 이른바 ‘박정희 키드’다.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사람을 뉴스에서 보며 자랐으니 나름 정통파다.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까지 국가가 개입하던, 많은 부분에 계몽과 관제가 ‘국룰’이었던 시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청소년의 독서 수준을 고양하고자 ‘자유교양’이라는 게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선생님의 감독하에 정해진 책을 읽고, 교내·군·도 대회를 거쳐 ‘대통령기쟁탈 전국자유교양대회’라는 전국대회까지 올라가는 시험을 쳤다. 하지만 나의 교양 레벨은 안타깝게도 군 대회 딱 거기까지였다. 도 대회에 나가서 단체우승을 한 우리 학교 대표들이 우승기와 학교 밴드부를 앞세우고, 쑥스러운 모습으로 귀향하던 행렬은 하필 우리 집 앞을 지나갔고, 대문 사이로 이를 지켜보던 내 어린 자존심에는 살포시 생채기가 났다. 상을 받은 친구들에게 ‘화이팅’, ‘브라보’, ‘멋지다’를 외치기엔 난 좀 쪼잔한 애였다.

나의 교양 레벨을 1도 높여주지 못한 자유교양 대신 진짜 책읽기의 시작은 유학 이삿짐에 들어있던 ‘옛날이야기선집’을 읽으면서다. 아마도 심심할 딸을 위해 엄마가 월부로 마련해준 것 같다. 촌뜨기 전학생에게 처음부터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고, 학교가 끝나도 갈 곳이 없으니 집으로 직행해서 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할머니에게 옛날얘기를 듣는 즐거움에는 미치지 못했을지 몰라도, 텍스트를 통한 동서고금의 옛이야기는 내게 다시없는 즐거움을 주었다. 어쩜 그리 재미있던지 옛날이야기 국내외 편 10권을 몇 번이고 읽어 마스터해버린 나는, 덕분에 친구도 사귀었다. 집 방향이 같은 아이들과 같이 하교할 때 가끔 옛날얘기를 해주었고, 제법 맛깔스럽게 그 내용을 재현해 냈던지 아이들은 무척 재밌어했다. 헤어져야 하는 지점에서도 끝이 안 나면 길가에 서서 이야기를 마저 마무리하며 우리는 친구가 됐다.

옛날이야기 책을 거의 마스터할 때쯤, 책읽기 - 정확히는 활자를 통해 실재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에 푹 빠진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서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소년중앙’, ‘어깨동무’ 같은 월간지를 사 모으고, 별책부록을 고이고이 간직했다. 또한 계림문고라는 문고판의 ‘괴도 루팡’, ‘소공녀’, ‘집 없는 소년’ 등과 같은 책을 사서 읽느라 매달 받는 용돈의 대부분을 학교 앞 문방구의 어묵 꼬치와 서점 나들이로 모두 탕진했다.

‘소년소녀 영원한 세계의 명작문고’. 책꽂이에 늘어가는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멋짐에 뿌듯했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리즈 목록에서 읽은 책에 X자를 그리는 기분이란, 아마 요즘 친구들이 하는 ‘빵지순례’와 비슷한 뿌듯함일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계림문고가 삼중당문고로 대체되었을 뿐 이런 행태는 지속됐다. (대학에 와서는 혼자 읽는 대신 친구들과 사회와 발제, 토론이라는 형식을 갖추며 책읽기를 계속했지만 그리 재미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단련이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타지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친구 같은 존재로 시작된 책읽기는 점점 습관이 됐고, 책을 통한 타자와의 공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평소 내가 느끼거나 생각은 했지만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글쓴이가 아주 잘 정리한 것을 발견할 때다. 희한한 감동과 함께 무릎을 탁 치고 ‘아하! 그래, 이거지. 나도 이렇게 생각은 했었는데…’라며 작가의 명료한 표현에 감탄하고 다음 줄을 아껴가며 읽을 때다.

이럴 때면 나도 글쓴이처럼 꽤 괜찮은 생각을 했다는 우쭐함과 더불어, 그런데 난 왜 이렇게 명쾌한 언어로 내 생각을 풀어내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이 동시다발로 저 명치에서부터 스멀스멀 일어난다. 어떤 묘한 기쁨과 서글픔이 6대4 정도의 황금비율로 교차한다고 할까? 작가와의 공감과 나의 한계가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그 순간, 조금 겸손해지면서도 내가 완전 바닥은 아닌 것 같다는, 그래도 중간은 가나 보다 하는 이상한 안도감. 나는 이 ‘아하! 그렇지’의 찰나를 기다리며 계속 책을 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P.S. 어라? 요즘 읽고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집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도 ‘위대한 책의 가치는, 독자가 읽다가 이것을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 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아 보통 님도 그리 생각하시는구나. 그런데 이 사람들도 ‘유레카’ 하는 순간에는 무릎을 치나 보다. 뭐 이런 느낌적인 느낌으로.

김영주(시청각교육과·87년졸) 국회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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