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인상 깊게 읽었던 책 한 편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한정현 작가의 장편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나를’)이다. ‘정상적’인 ‘남성’ 위주의 역사 속에서 여성, 성소수자, 혹은 둘 모두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존재는 끊임없이 배제되어 왔다. 이렇게 편향적으로 쓰인 역사를 경계하는 소설 ‘나를’은 긴장감 있는 추리물의 형식을 빌려 배제된 이들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대상화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나를’의 구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성형외과 의사인 ‘연정’과 문화 연구자 ‘설영’에게 낯선 단어들이 나열된,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가 도착한다. 접점 없이 살아온 듯하던 두 사람은 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발단으로 서로를 만나 암호 같은 말들의 의미를 차차 풀어나간다. 이윽고 두 사람은 메시지가 감추고 있던 진실을 알게 되는데, 거기에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 한 간성(間性, intersex) 인물의 삶이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종적을 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간성을 향한 사회적 폭력과 절대 무관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간성이란 전형적인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부합하지 않는 신체 특징을 지니는 상태를 뜻하는 용어이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는 현대에도, 생물학적으로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랄 때는 여성이나 남성 중 한쪽의 신체적 특성을 가지는 것만이 가능하며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간성인 사람은 그들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과는 별개로 여성과 남성의 특성을 모두 갖거나 한쪽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생식 기관과 염색체 패턴 등을 지닌다.

간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유사한 신체적 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여성이나 남성의 신체처럼 보이지만 호르몬의 양 등이 미세하게 다른 경우 터 내부 및 외부 생식 기관이 양쪽 성 모두의 특성을 띠는 경우, 그리고 태어날 당시부터 간성의 특징이 드러나는 경우와 사춘기를 지나면서 특징이 드러나는 경우 등, 간성 신체는 하나로 섣불리 정의될 수 없는 연속적인 스펙트럼선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간성 특성을 보인 사람들은 유엔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7%, 즉 1000명당 약 17명이며 자신이 간성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욱 큰 비율일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7%라는 비율은 머리카락이 붉은색인 사람들의 비율과 비슷하다고도 한다. 비율만 고려한다면 붉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받아들이듯 간성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라는 견고한 성별 이분법으로 점철된 사회적 현실 속에서, 간성인 이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간성으로 태어난 아이는 대부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한쪽 성별로 결정되며 해당 성별의 특성에 들어맞는 신체를 만들기 위한 ‘치료’를 받게 된다. 출생 신고를 할 때 남성과 여성 중 한쪽을 택해야만 신고가 가능하고 이에 따라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성인 신체로 살아가는 것이 건강에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도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속하기 위해 심각한 신체적 손상과 심리적 고통 등의 위험을 수반하는 교정 치료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이외에도 간성인 이들은 신체적 특징이 알려질 때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경험할 위험이 존재하며, 성장한 후 성별 정정 과정을 거칠 기회를 얻더라도 자기 몸과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반드시 한쪽 성별을 골라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다. 독일과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간성인 이들의 성별을 기록할 때 제3의 대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가 마련되어 있으나 국내는 아직 관련 논의조차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우리를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정된 틀 속에 가두지 않았다. 인간의 신체는 개인 하나하나가 지니는 매우 다양한 특징들을 포함하는 스펙트럼에 가깝다. 하지만 사회의 곳곳으로, 거리로, 일상의 단면으로 눈을 돌리면 마치 처음부터 모든 인간이 두 종류의 성별로 나뉘어 있었던 듯한 환각이 가득하다. 사진 한 장을 찍을 때조차 남성의 포즈와 여성의 포즈가 구분되어 있지 않던가. 각종 미디어 매체 속 남성과 여성은 연애 스타일부터 취향과 성격까지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처럼 묘사되고, 환상이 가미된 게임이나 만화영화 광고 속에서는 마치 종족이 다르기라도 한 것처럼 신체 골격과 구조의 차이를 한껏 강조한다.

전통적 이분법이 만연하는 사회 속에서 정해진 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은 억압의 대상으로서 비가시화되기 십상이다. 전형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지워진 이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되살리고, 성별에 대한 보다 유연한 사고로 경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서두에서 소개한 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속 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어디 갈 때마다 금지당할까 봐 무서워요. 기준에서 벗어나면 누구든 금지당할 수 있는 거잖아요.”

 

* 이 글은 책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와 논문 ‘신원 관리에 있어 간성의 법적 인식에 대한 고찰’(박은영, 2019)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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