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다른 대학에서 진행한 교양교육 포럼에 참석했다. 교양교과의 방향, 의사소통 교육, 소프트웨어교육 등 포럼의 중요 주제를 듣던 중 공통적으로 등장한 화제가 있었다. 장안의 화제가 된 CHATGPT가 그 주인공이었다. 특정 키워드를 제공하면 AI가 참고자료를 추출, 검토하여 원하는 분량의 글을 쓰기도 하고 음악을 만들기도 했으며 프로그램 코드를 간결히 짜기도 했다. 관련 자료를 소개한 연사는 직접 CHATGPT를 사용한 결과를 보여 주었다. 특정 주제로 글쓰기를 지시하자 순식간에 그럴듯한 글이 나왔다. 허술한 부분이 많았어도 결과물을 실제로 보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처음 저 결과물을 보았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학생들 글쓰기 과제는 어쩌나. 같은연구자들끼리 모일 때마다 CHATGPT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방어적이었다. 학습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비평하며 자기 의견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가르쳐 왔고 그 효과를 믿어왔던 직업세계에서 CHATGPT의 등장은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상호신뢰와 전문성이었다. 학습자와 교수자가 정직하게 자신의 언어로 글쓰기를 해 왔고, 그것을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믿음을 쌓고 서로에게 보답할 수 있는가. 이러한 기술활용을 이해하고 점검하며 평가할 능력이 교수자에게 있는가. 전자와 후자 모두 그동안 익숙하게 해 왔던 연구와 직업세계를 상상할 수 없이 뒤흔들 것이라는 예감이 불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주변에서 슬슬 CHATGPT를 활용한 에피소드를 듣게 되면서 이 고민은 깊어졌다. 의례적인 이메일의 문구를 만들거나 재미있는 글의 뒷이야기를 만드는 수준만이 아닌,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CHATGPT 저, 파파고 옮김, 서터스톡 일러스트) 출간이라는 집단적인 기획을 통과한 프로젝트도 그 예에 속한다. 글쓰기로만 한정한 예시이지만 관련 법령과 윤리가 등장하기 전의 새로운 기술은 사용자의 기묘한 호기심과 열기를 반영하며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었다. 아마 새학기가 시작될 3월에는 더 빠른 형태로 CHATGPT를 활용한 무언가가 등장할 것이다.

CHATGPT와 글쓰기를 다룬 자료를 살펴보면 아직까지 해당 AI 글쓰기 작업이 용인되는 나름의 구분선이 있어 보인다. 한국 에너지기술연구원의 이제현 연구원이 제공한 업무효율화 가이드(2023.02.15.)나 CHATGPT를 활용한 글쓰기의 한계를 다룬 기사(김지원, 경향신문 2023.02.17.) 등은 공통적으로 ① 저자와 내용의 전문성이 중요하지 않은 글 ② 산출물의 유형이 일정한 글 ③ 사람이 결과물의 사실관계 점검이 가능한 글에 주목한다. 반대로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것이나 미시간주립대 총기난사 사고 애도를 CHATGPT로 작성하자 비난이 쇄도한 것은(김은성, 경향신문 2023.02.19.) ① 지적재산권이 있는 글 ② 공동체의 슬픔과 문제상황을 마주하는 글 ③ 저자와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 글은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글쓰기를 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CHATGPT로 써도 되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구분하는 것은 상황을 단편적으로만 받아들이게 한다. 오히려 지금 질문을 던질 것은 ‘CHATGPT로 쓴 글을 우리는 읽고 싶은가’이다. 어떤 목적에서건 조합된 글, 균질화된 글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유의미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독자는 같은 마음으로 CHATGPT가 쓴 글을 바라볼 수 있는가. 가볍게 쓰는 글이라도 때로는 읽는 사람이 상처받는 일은 과연 없을까. 해당 AI를 개발한 샘 올트먼이 AI의 수익 창출로 인한 시장경제 붕괴를 우려한 것을 생각할 때(이상덕, 매일경제 2023.02.06자 기사 참고) 유무형의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구분하는 선이 없다면어떻게 해야 할까.

십오 년 전 조교로 일할 때 스마트폰 보급을 주제로 한 학생들의 글쓰기 과제를 첨삭한 적이 있다. 과제 과반수가 스마트폰 사용에 부정적이었으나, 그들도 1~2년 사이 스마트폰을 마련했을 것이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공부를 하거나 여가를 보내거나 업무를 처리할 것이다. CHATGPT도 마찬가지다.

실상 CHATGPT는 특정한 장르와 형식을 규격화한, 외주화된 글쓰기를 제공한다. 적절한 형식과 키워드를 제공하면 완성되는 글은 생각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글쓰기가 쉽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고통스럽거나 쓸 글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학교의 연구자들도 CHATGPT를 경유하는 방식을 탐색하고 이것에 익숙해질 것이며 어쩌면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쓰는 글이 틀에 박혀 있지는 않은지, 불필요하게 너무 많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생각을 외주화하지 않으며 개인을 통과해 나오는 글쓰기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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