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따뜻함이 품 안으로 스며드는 계절이다. 10월의 끝자락에 디뮤지엄의 ‘어쨌든 사랑 : Romantic Days’ 전시를 친구와 같이 보러 갔다. 순정만화를 모티브로 가져온 작품들이 많았는데, 순정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니었기도 했고 에로스적인 사랑은 그다지 감흥이 없어서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시험 기간이 이제 막 끝나서 지친 상태임에도 얼굴을 보자고 달려온 친구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내게 더 가까운 따뜻함이었다.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주고, 내가 아플 때 걱정해주고, 종종 잘 지내는지 연락하는 따뜻한 챙김이 나에겐 돌봄이고 사랑이다. ‘동물의 숲’(닌텐도 스위치 게임) 게임 캐릭터 같은 따스움. 비록 내가 동물의 숲 게임을 직접 해본 적 없지만, 동물의 숲은 참으로 따뜻한 메타버스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활동이 비대면이었던 새내기 시절 예술교육 봉사동아리에서 함께했던 친구와 오랜만에 연이 닿아 올해 8월부터 그 친구가 모집한 글쓰기 소모임에 함께하고 있다. 소모임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속마음을 글로 나눈 다음, 글을 쓴 당사자보다 더 깊이 정성 들여 글을 들여다보며 의미를 발견해내고 그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합평 시간을 화상회의로 가진다. 모임 멤버들과 글을 공유하는 경험은 처음에는 내 일기장을 그대로 북 찢어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일기장을 낱낱이 다 공유하는 시간 덕에 오랫동안 일기를 붙들고 계속 내 마음을 돌봐갈 의지가 생겼다.

내가 받은 따뜻한 돌봄 덕에 지금이 있다. 가족에서 시작해서, 가족같이 끈끈한 동기들과 가족 같은 공동체로 묶인 창업팀 멤버들 - 일 얘기 외에는 서로의 속사정을 잘 공유하지 않아 잘 몰랐다는 것, 그러다 날 잡고 새벽 내내 수다를 떨며 허물이 허물어졌다는 사실마저 정말 가족 같다- 까지.

심리학은 어디든 곁들이면 맛있게 조화될 수 있는 소스나 미림이 주재료인 느낌 같다. 요즈음은 어쩌면 심리학 전공에 발을 담가본 경력은 그 자체로 전략적 요충지의 위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열심히 복수전공하고 있는, 같은 창업동아리에서 다른 창업팀 소속인 친구가 꿈꾸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비전을 엿보면서, 심리학이 사업에 주재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니 현재 그 친구가 만들고 있는 제품은 감정을 잘 기록하고 돌볼 수 있는 일기인 것 같은데, 마음을 섬세하게 돌볼 수 있는 여러가지 트래커와 체크리스트를 수록한 형태가 될 듯싶다.

디자인적인 창의성을 위해서는 기술의 차가움과 경직됨과 소외 대신, 아날로그의 재치와 독특함과 포용으로 접근하라는 이야기를 디자인씽킹 수업에서 듣는다. Fun theory는 Heartstorming 방법론을 따르는 동시에 가능한 것이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말 써보고 싶어하고 쓰면서 따뜻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려면 얼마나 무수한 경청과 숙고와 착오를 거쳐야 하는지를 직접 부딪치며 느끼고 있다. 고객의 페인포인트를 찾아내고 니즈를 채워주는 솔루션을 제시한다는, 마케팅 전략에도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도 광고 전략에도 창업 아이템을 계속 찾아다니는 단계에도 모두 정통하는 이 방법론을 이제 지겹다 싶을 정도로 익숙하게 듣고 배우고 있는데, 결국 여기에도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는 게 최근의 깨달음이다.

내가 속한 창업팀 역시 고객의 니즈를 채워주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따뜻함’과수익성이 동반할 수 있는가를 본격적인 안건으로 늘 고민하고 있다. 현재는 사람들의 진심을 모아서 전해주는 형태의 서비스가 ‘비즈니스모델’이 될 수가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보는 단계에 있다. 단, 사람들의 진심과 감정을 돈벌이에 이용하기만 하는 술수를 부리게 되지는 않도록 경계하고 유의해야 한다. 모든 조건이 적절하게 맞아 들어가는 sweet spot의 위치를 찾아가는 게 어렵다. 시야가 막힌 채 도화지에 그림은 그려야 하고 그 그림이 점차 형체를 갖춰가야 하는 느낌이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결과론적으로 혼자만 떼돈 벌고 성공하려면 앞뒤 주변 물불 안 가리고 혼자만 잘나서 이기적으로 직진해야 이기겠지만, 나는 기회론적으로 접근하겠다. 여기저기서 돈 벌 기회, 일할 기회가 많이 들어오는 사람이 되려면 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팀으로 협업하면 성격이 잘 맞는 사람, 팀으로 따뜻한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팀으로 협업하는 시너지의 위대함을 택한다. 내 작은 시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던 고지의 봉우리가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고 마침내 발견되고야 마는 짜릿한 순간은 모두 팀으로 협업할 때 나왔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따뜻해지고 싶다. 온정이 많이 모여야 품을 수 있는 열정의 온도도 높아지고, 열이 올라가는 만큼 더 밝게 발광할 수 있으니까.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자신을 별에 비유해왔고 밝게 빛나는 별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빛을 모으기 위해 따뜻한 별이 되고 싶다. 여러분들의 오늘 하루가 따뜻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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