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구미호뎐(2020)

출처=드라마 포스터
출처=드라마 포스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령, 심해 깊은 곳이나, 광활한 우주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할지에 관한 생각들은 항상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가 돼왔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구전되어오는 괴담도 그러하다. 괴담에 등장하는 요괴, 귀신, 괴물 등은 일상에서 비켜나 비일상의 영역에 위치하는 신기하고 기이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언뜻 보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우리의 상상력과 가치관이 반영된 존재들이기도 하다. 드라마 ‘구미호뎐’은 한국의 설화적 세계관 속 비인간적 존재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이들을 단순히 괴물로써 타자화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 삶 속의 일부로 바라보고 있다.

‘구미호뎐’은 불사의 존재인 구미호가 오랜 시간 사랑하는 연인의 환생을 기다리며전생에서부터 얽힌 인연과 갈등을 현생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구미호뎐’의 캐릭터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 두 가지는 ‘남성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성=구미호’라는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는 것과, ‘구미호’라는 존재가 현대 사회 속에 섞여 살아가며 외부의 악으로부터 인간계를 지켜내는 영웅적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구미호는 인간을 잡아먹는 무서운 요괴, 사랑에 배신당한 복수의 화신, 인간이 되지 못한 한을 가진 존재로서 여성의 형상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구미호뎐’의 구미호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며, 요괴가 아닌 영웅이다. 구미호이자 주인공인 ‘이연’은 인간을 해치거나 이용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들을 처단하며 인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자 인간과 섞일 수 없는 외부적 존재였던 구미호의 타자성을 극복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불어, ‘구미호뎐’은 기본적으로 구미호 설화를 골자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 우렁각시, 현의옹, 탈의파, 어둑시니 등 다양한 설화적 인물을 하나의 이야기장에 통합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이야기를 풍성하게 끌어내고 있다.

서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점은 환생 모티프를 빌린 순환적 시간관이다. 환생의 이미지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과거-현재-미래의 분절적이고 일방적인 직선적 시간관념을 해체하는 데서 시작된다. 환생은 삶과 죽음이 대립적인 것이 아닌, 연속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순환적 시간관을 제시한다. 환생 모티프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어지는 운명적인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식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콘텐츠에서 꾸준히 이용됐다. ‘구미호뎐’에서도 구미호가 환생한 연인과 극적으로 재회하여 합일을 끌어내며 로맨스 서사의 구축이 이루어진다. 직선적 시간관념에서는 환생 모티프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순환하는 시간관은 인물들이 전생의 상처를 치유하고 운명을 극복해 못다 이룬 인연을 이룰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한, 비극으로 끝날 수 있는 이야기에 새로운 희망을 품어오며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힘을 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미호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인간 중심적 사고의 탈피를 통한 ‘우리’의 확장이라고 본다. ‘우리’라는 단어는 좁게는 자신이 속한 집단부터 넓게는 전 인류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는 인간인 존재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를 통해 인 외의 존재를 배타적이고 외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타자화는 전쟁, 기후 위기 등을 일으키며 문명의 종말에 대한 위기를 고해 왔다. 반면, ‘구미호뎐’에서는 구미호를 비롯한 다양한 인외의 존재가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물론 ‘구미호뎐’에서는 그 존재들을 대부분 요괴나 신들로 특징지었지만 이는 자연, 동물,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존재들로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그들 또한, 인간처럼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하나의 삶을 살아내는, 그 자체로서 완전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존재의 차이라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특성의 차이인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타자화하는 순간, 화합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구미호뎐’은 차이와 차별을 넘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이 경계를 허물고 함께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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