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부터 학부생을 대상으로 여성학 수업 가운데 <노동과 젠더>를 가르치고 있다. 노동운동에 대한 대학사회의 관심이 1980~90년대와는 상당히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취업을 준비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장기화되고 있어 학생들의 처지는 상당히 힘겨운 상황이다. 취업을 할 수 있는가, 혹은 언제 할 수 있는가, 과연 자신이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한 지도 이미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여성노동 이슈에 관심을 갖고 문제의식을 심화할 수 있도록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며 한 학기를 보내고 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현저한 확산 속에서 성차별적인 여성노동의 현실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 내에서 여성노동에 관한 이슈는 과거에 비해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청년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사망하는 너무나 가슴 아픈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9월 24일에는 지하철 신당역에서 근무하는 여성 역무원이 직장 내 스토킹으로 퇴사 처벌을 받은 남성동료에 의해 지하철 내 화장실을 순찰하다가 사망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0월 15일에는 SPC 계열사의 평택 SPL의 제빵공장에서 새벽근무를 하던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상반신이 끼이면서 참혹하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청년여성 노동자의 사망은 안전불감증과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추구로 인한 열악한 노동환경이 문제라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직장내 젠더폭력과 여성의 신체를 고려하지 않은 기계설비로 인해 발생한 젠더문제가 관련된 노동 이슈이기도 했다. 학교를 떠나 취업을 통해 마주한 직장 혹은 직업의 세계에서 청년여성노동자들의 안전은 현재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학교의 담장 밖으로 나서기 전까지 현실의 노동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의해 여성들이 처하는 노동시장과 노동환경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11월 중순에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25.8%가 직장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특히 비정규직인 여성 노동자의 경우엔 29.5%로 그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성추행·성폭력 경험이 있는 여성의 63.1%는 대응으로 “참거나 모르는 척”(중복응답)하거나 “회사를 그만둔”(37.8%)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서 스토킹을 경험한 여성 노동자도 13%에 달했다.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인 여성의 경우엔 16.5%로 더 높았다. 스토킹 행위자는 주로 상급자(35.7%) 또는 비슷한 직급의 동료(28.6%)인 것으로 조사되었다.(“여성 노동자 넷 중 한 명은 직장 내 성추행·성폭행 경험: 직장갑질119 조사…비정규직은 29.5%로 더 높아”, 《한겨레신문》, 2022년 11월 13일자)

 

이처럼 여성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현실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학생들에게 취업 기회의 문을 여는 데에만 도움을 제공한다면,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노동현장에서 겪게 되는 참혹한 현실에는 눈 감은 채 위험사회에 진입하도록 만드는 것과 같다. 더욱이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새 정부의 기조 하에서, 여성의 노동현실이 더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대학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의 경험과 요령을 학생들에게 전달해 학생들이 졸업 후 자신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에 성공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장기불황이 지속된다면 여성들은 성차별적이고 위험한 노동 환경에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욱 심각한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학은 여학생이 취업 후 겪게 되는 성차별적인 노동 현실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도록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대처 능력도 가질 수 있도록 여성주의 관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대학은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일자리의 정보나 선배들의 경험담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차별적인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대학에서의 여성노동(인권)교육은 일차적으로 노동시장의 성차별적인 측면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여성노동운동(노동조합 등)의 역사를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왔는지를 앎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자기인식과 연대의 힘을 일깨우도록 한다. 셋째, 여성노동사를 통해 여성노동이 갖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넷째, 성별화된 여성노동인 돌봄과 가사노동의 가치를 재인식하도록 함으로써 남성중심적 노동 개념에 대한 여성주의적 이해를 제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청소노동자 문제는 물론, 이주여성노동자 등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 및 지위의 여성이 겪는 노동문제에도 공감하고 여성주의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여성노동(인권)교육은 학내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규교과과정으로 편입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부터 여성노동(인권)교육의 제도화를!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