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출처=영화 포스터
출처=영화 포스터

후회의 순간들이 쌓여 삶을 이룬다. 삶은 매 순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두고 “이 순간 이랬더라면”이라고 반추하며 나아가지만 돌이킬 수 없다. 수업에 지각했을 때 일찍 잤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것부터 어릴 적 꿈을 되돌아보며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까지, 크고 작은 후회와 이루어지지 않은 여러 가능성으로 삶이 구성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에블린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늘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축적된 인물로 묘사된다. 이토록 아무것도 못 하는 에블린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영화에는 ‘이상하고 괴이한’ 행위나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에블린이 궤도를 잘못 계산해 연결된 우주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결정되던 분기점에서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종족이 승리하고 진화했다. 여기서는 축 늘어진 손가락으로 상대방을 어루만질 수 있지만 뜨개질이나 피아노 연주처럼 정교한 행위는 손으로 할 수 없다. 대신 그런 것들은 발로 한다. 손가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들에게는 그저 손이 그런 기능을 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을 해내야 한다.’라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잣대일 수 있다. 그리고 손가락이 핫도그가 아닐 뿐, 이들과 유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좌절과 성공이라는 것도 특정한 기준으로 줄 세우고 우열을 따지는 데에서 온다. 각자는 각자의 삶에서 지향하는 바가 있지만 그것을 모두 발현하며 살기에는 가로막는 조건들이 많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두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그 간극만큼 절망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룬다고 해도 그만큼 잃는 것이 있다. 무술을 연마하고 배우로 성공한 에블린이 첫사랑 웨이먼드를 떠나보낸 것처럼. 결국 어떤 것이 더 옳은 선택인지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알파버스 사람들로 둘러싸여 궁지에 몰린 에블린의 돌파구는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모두 무력을 통해 일률적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는 해결책을 제시해줌으로써 적들을 뚫고 나갔다. 사별한 아내의 향수를 뿌려주거나 동성 연인의 결혼식·거북목 교정 등 원하는 것을 실현해주는 것은, 이전의 에블린이 전투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장착해 단순히 물리치려 했던 장면과 대비된다. 그리고 이 방법은 한없이 나약해 보였던 웨이먼드가 제안한 ‘친절’로부터 비롯된다.

섬세한 친절을 베푸는 것은 많은 것을 고려해야만 가능하다. 끝없는 실패와 거부, 좌절의 경험이 축적된 에블린은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졌을 때를 상상할 수 있다. 결국 에블린이 이루어내지 못했으므로 성공과 실패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에블린은 꺾이고 억눌렸던 ‘만약’의 순간들만큼 가지를 뻗어내 모든 상황을 가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온 우주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보잘것없던 에블린은, 그러므로 가장 적합한 에블린이었다. 쓸모없음(無用)이 그를 가장 유용(有用)하게 만들었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금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서 그것의 ‘무소용’을 걱정하고만 있는데 ⋯ 왜 유유히 소요(逍遙)하며 그 나무 아래서 자보지 않는가? 도끼에 맞아 요절할 리도 없고 그 나무를 해칠 아무것도 없는 것은 그것이 ‘무소용’하기 때문인데, 어찌 그것을 괴로워한단 말인가?” 재목으로 유용한 나무는 도끼에 베임으로 생명이 다한다. ‘쓸모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쓰인다는 것이므로, 결국 그 과정에서 자신이 소외될 수 있다. 외부의 기준에 의해 재단되고 온전히 자신대로 살아갈 수 없다.

에블린은 끝없이 좌절하면서도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에게 부정당한 딸이 아닌,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는 나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 조이를 힘껏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분기점마다 사랑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에블린의 선택은 모든 가능성을 뚫고 만들어낸 단 하나의 사건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가 존재하고 서로 마주한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인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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