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작은 아씨들(2022)

출처=드라마 스틸컷
출처=드라마 스틸컷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22년 10월 9일 12부작으로 끝을 맺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내던져진 자매들은 여전히 우애가 좋지만, 소설 속보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과 영화에서 여러 번 합을 맞춘 정서경 작가의 두번째 드라마로, 미술감독 류성희까지 합류해 세간에서는 ‘박찬욱 없는 박찬욱 팀’이라고도 불리운다. 현 사회의 문제점을 냉철하고도 아름답게, 그러나 어딘가 찜찜하게 묘사하는 박찬욱 영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마지막 화에 전국 시청률 11.1프로를 기록하며 흥행을 거두었는데, 이는 최근 한국 드라마들의 흥행 여부를 생각해보면 가히 기록적인 수치다. 그 이유는 전형적 한국 드라마로부터의 탈피에 있다. 이는 본 드라마의 뛰어난 미적 감각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플롯에 더욱 적합하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여성에 의해서 구상되고 여성으로만 채워진 세계다.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소위 말하는 ‘알탕 영화’들은 남성 주인공, 남성 악역, 남성 조연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한국 영화계에 오랜 시간 몸 담아온 정서경 작가는 지금껏 참여한 영화 속에서도 입체적인 여성을 그려왔고, 이번 ‘작은 아씨들’에서도 그러하다. 정서경이 그리는 세계에서는 주인공, 주인공의 조력자, 주인공과 대적하는 악역까지 모두 여성이다. 그 중 가장 주목할 캐릭터는 악역으로 그려지는 ‘상아’다. 본인보다 잘난 여자를 질투해서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악행을 일삼는 여성 악역들은 작중 행동의 설득력이 떨어져 납작한 캐릭터로만 남게 된다. 그에 반면 정서경 작가의 세계 속에서는 악역일지라도 고유한 서사를 가진다. 본인의 서사에서 비롯된 결핍을 채우고, 순전히 본인의 흥미를 충족하기 위해 악행을 일삼는다. 이와 더불어 돋보이는 것은 남성 캐릭터의 사용인데, 작중 초반 상아의 남편인 ‘재상’은 드라마의 악역처럼 그려지지만, 사실은 ‘상아’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악행을 행하며, 결국 죽음까지 고사한다. 시청자들은 ‘재상’을 통해 전복성에서 비롯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는데, 일차적인 이유는 자신이 상상했던 흑막이 틀렸다는 점에서 기인하고, 최종적으로는 지금껏 한국드라마에서 여성이 수행해온-사랑에 눈이 멀어 비이성적인 행위를 하는-역할을 남성이, 그것도 작중에서 기득권의 지위를 갖는 남성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온다.

이러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작은 아씨들’에서 그리는 사랑의 방식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자. 중세 서구 궁정식 사랑에서 비롯된 낭만적 사랑은 사랑의 형태만을 유지하는 허울 뿐인 권력 빌려주기를 통해 본질적 문제점을 회피해왔다. 한국 드라마는 무뚝뚝한 부자 남성과 저소득층이지만 발랄한 여성의 연애사를 그리며 이러한 회피에 일조해왔다. 하지만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힘으로 이뤄낸 계층의 사다리가 아니다. 여성 주인공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을 향해 있다. 자신의 근간인 가족을 지키고 싶은 인주, 자신의 정의를 끝까지 추구하고 싶은 인경, 자신이 선택할 수 없던 영역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두지 않으려는 인혜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이 돈과 동일시되는 일은 너무나도 쉽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작가는 이러한 욕망을 가진 세 자매를 통해 노골적으로 돈 이야기를 한다. 확실한 건 이러한 세 자매 앞에서 사랑은 그녀들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작 중에서 여성을 향한 남성의 사랑은 여성들의 솔직한 욕망을 실행하는 수단으로 쓰일 뿐, 드라마가 조명하는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그 여성들의 욕망의 실현이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 이러한 여성들이 구성하는 세계. 드라마 ‘작은 아씨들’ 속 세계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와 같은 세계가 존재한다. 현실 세계이든, 미디어가 그려내는 사회이든 간에 여성들이 주력이고, 여성들이 디폴트인 세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기에 여성이 디폴트가 된다는 것은 곧 무한한 가능성의 제공으로 이어진다. 여성 히어로물을 보고 자란 세대의 여자아이들이 갖게 되는 다양하고 멋진 꿈들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으로만 구성된 아름다운 이화 속에서 욕망 있는 여성들과 성장하는 우리는 어떠한 꿈을 꿀 수 있을까? 이화를 떠난 후의 우리가 더욱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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